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6890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0-07-30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제장마을 가는 길 / 폐갱(廢坑)에서 / 도계를 넘으며 / 안경다리를 지나 / 쑥물 / 사북, 그 이후 / 완행버스에서 / 오후 세 시의 신호수 / 펜스공 / 무연고 행려 사망자 공고문을 보며 / 자본주의 배추 / 10월에 / 부활주일 예배 / 한덕철광 신예미광업소 매몰자를 위하여 / 헬리패드에 서서 / 강에게 시를 돌려드리다 / 사북 기행
제2부
성금요일 / 석탄가루 묻은 수첩 / 24번 꽃무덤 / 밥 한 끼 / 햇반 더하기 컵라면 / 글렌 굴드의 노동 일기 / 5월이 가네 / 굴비를 엮으며 / 바질 / 파꽃 서사 / 제초제 / 뼈 한 조각 / 메마른 겨울 / 예수님의 못
제3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 배려 / 놓아주는 것도 사랑이다 / 망가지지 않으려면 / 저물녘의 기억법 / 농부 / 호미를 씻으며 / 고구마 / 제장마을에서 / 청령포에서 / 돌아 흐르는 강 / 풍기할매 / 11월 / 하송리 은행나무 / 엄마를 잃은 I에게 / 저물녘 묵상 / 두 발을 강에게
제4부
줄배 / 벽 / 바람의 일 / 연리목 / 당신의 이름을 지울 수가 없네 / 콩 고르는 저녁 / 가재골 형님 / 우리 큰오빠 / 고모 생각 / 언니에게 / 장성 가는 길 / 감자전을 구우며 / 개장 / 꽃이 진 자리 / 닥나무 서사 / 신발 / 봄 안부
■ 작품 해설:21세기 사실주의 휴머니즘의 새 지평-김영철
저자소개
책속에서
폐갱(廢坑)에서
개망초 세잎클로버
지천으로 피어난 광장
검은 광차에 실려
어둠 속으로 불려간다
누군가는 웃고 떠들었다
누군가는 무섭다고 도망가고
또 누군가는 투쟁하던 때를
떠올렸다
우리는 사막의 미로에
왕과 함께 버려진
노예처럼
갱도를 떠돌았다
지하 1,500미터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막을 떠도는 그 노예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전해질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돌고 있노라고
헬리패드에 서서
외계의 하늘을 바라보며 헬기의 이동 경로를 따라 서성이다 헬리패드 위에 무사히 내딛는 것을 보고서야 깊은 숨을 몰아쉽니다 언젠가 잡풀 무성한 강변에서 사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수메르어처럼 낯선 헬리패드를 만들던 그가 전화를 걸어 부탁한 것은 그보다 더 낯선 식염 포도당정이었습니다 동네 하나뿐인 약국에 들러 어렵게 찾아간 남한강변 걷기만 하는데도 바닥의 뜨거운 열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박하사탕처럼 하얀 식염 포도당정과 얼음 결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생수 덕분인지 잠시 웃어 보였습니다 뒤에는 아직도 베지 못한 풀들이 무성했지만 어디에서 마쳐야 하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헬리패드는 무사히 완성되었고 몇 달 지난 후부터 헬기가 뜨고 내렸습니다 닥터헬기장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그것을 타고 날아갔다면 이쪽에서의 시간을 좀 더 반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약국이 사라지고 그도 사라졌습니다 읍내 유일한 약국이 없어져 함께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가 만든 헬리패드만은 그곳에 남았습니다 그게 남아 있는 한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때 언제든 좌표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구조 깃발을 흔들 수 있다는 것 여전히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석탄가루 묻은 수첩
익숙하지 않은 교대 시간
자주 고장 나는 컨베이어 벨트
너무 쉽게 막히는 배수관
낙탄은 수시로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으며
그때마다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야 했다
수첩에 적힌 것 하나라도
지워졌더라면
석탄 가루처럼 무수한 날들
그의 편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이 담긴
작업장 CCTV를
끊임없이 되돌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나였으나 하나가 아닌 시간들
피어보기도 전에 진다
그의 것이었으나
그의 것이 되지 못한
헤아릴 수 없이 검은 날들
수첩 속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