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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7446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0-12-2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붉은발말똥게 / 긴꼬리딱새 / 제비 / 남방동사리 / 꿈에 본 달 / 알락꼬리마도요 / 비비새 / 아비 도래지 / 애기뿔소똥구리 / 버들치 / 갯게론 / 거제외줄달팽이 / 팔색조는 보이지 않는다 / 사막여우 / 아무렇지도 않은
제2부
꽃의 말 / 풍란 / 만주바람꽃 / 섬노루귀 / 수선화 / 연리목 / 처음 나온 나뭇잎 / 자작나무 / 꿩의바람꽃 / 팔만대장경 / 나뭇잎 편지 / 산벚꽃 / 은행나무 / 매화꽃 편지 / 썩은 화살이 숲을 이룬다
제3부
이슬은 풀잎의 눈 / 지리산 고운동 / 소나기 한 홉 / 가라산 / 평사리 편지 / 노자산 / 눈부처 / 첫눈 / 환상통 / 지리산 작설차 / 계절 / 모래톱 / 동천 / 성포항 / 윤슬미술관 / 학동 몽돌밭
제4부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 와현 바다 / 청사포 / 항구다방 / 바람이나 알 만한 것 / 역방향 좌석 / 바람 소리 / 황금빛 브라자 / 고것밖에는 / 누 떼가 살아가는 법 / 스무 살의 그 여자 / 천천히 먹어 / 가로수 / 먹과 색 / 진주 사람 강상호
작품 해설:가만히 들여다보는 생명 탐구 - 이응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붉은발말똥게
이미 물을 떠났으나
물을 버리지 못하여
물과 흙의 경계에 서성거린다
바다를 이미 떠났으나
두 눈 가득 차오르던 짠맛을 잊지 못하여
민물과 바닷물 사이에 집을 짓고
두문불출,
보이지 않는다
갈대숲을 요란하게 헤매고
굴 속에 시끄러운 귀를 밀어 넣어 보았다
죽은 고기를 던져놓고
시간을 접어 바위처럼 기다렸지만
너의 사랑법은 부재 혹은 멸종
갈댓잎은 초승달처럼 얼굴은 베고
설핏 붉은 발이 보였으나
도둑게 한 마리 게게게게
시간을 훔쳐 붉은 해 속으로 건너갈 뿐
너는 없다
없음으로써 너는 어디에선가 있다
꿈에 본 달
먼 곳에서 전화가 왔다
벌써 죽어서 그믐달 달그림자 같은
사람의 안부를 묻는다
오래전 친구라 한다
아마 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고
마침 게 도감을 읽다가
엽낭게 페이지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주 작아서 꼬마게라고 부르기도 하고
담배 피우듯 모래알들을 마셨다 내뱉은
흔적이 염주알 같아 염낭게라고도 한다
경단 모양은 작은 달처럼 동글동글한데
잡으면 부서져서 모래가 되어버린다
잡히지 않아 꿈에 본 달이라고 한다
썰물 지고 달이 차오르는 모래밭에서 게는
열심히 모래알을 굴려 달을 토하고 당신도
어디선가 차오르고 있을까 보고 있을까
자작나무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서 빛나네
몸은 여기 있고
마음은 저기서 반짝이네
“한 번도 흰 발목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끝도 시작도 없는 설원을 검게 가르는 육중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수평 설원에 수직으로 달리는 흰 숲의 대열
사선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깊고 검은 눈동자
혁명에는 끼어들지 못하고 사랑에도 실패하고 인생을 탕진한 채
붉은 아궁이 자작나무처럼 자작자작 타들어가는 밤
그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위대한 패배의 길에 복무하리라는 것을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