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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시론
· ISBN : 9791130821337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4-02-08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비인간타자와의 쟁론
황야는 어떻게 증언하는가― 2010년대 현대시의 동물 표상
생태적 아노미와 기후시
다시 인간으로서― 탈주체 담론에 대한 휴머니즘적 전회
가능주의자의 뒷모습― 나희덕 시인의 문학
혁명적 시간과 흑백 풍경으로서의 시인―이기성, 『동물의 자서전』
침묵과 쟁론― 안태운 시인의 침묵하는 능력에 기대어
최소한의 윤리―서윤후 시인의 시와 아도르노의 「뉘앙스 앙코르」
대화인가 도구인가―인공지능 시집 『9+i』의 미적 특징과 논점
제2부 불화의 공동체
대화의 발명― 김언 시인과 김행숙 시인의 경우
윤리적 짐승의 딜레마― 현대시의 타자의식
문학은 광장이 될 수 있는가― 주민현·정다연 시인의 광장‘들’
장소의 귀환― 서효인 시인의 시적 변화
이방인이 될 권리― 김현 시인의 젠더정치적 공간
자아로부터의 자유― 이소호 시인의 시에 대한 의도적 오독
제3부 침묵의 반향
얼굴의 요구― 나르시시즘의 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대면하는가
대명사의 윤리― 강성은·오은 시인의 시
관광객으로서의 타자― 김유림·곽은영 시인의 시
소년이라는 제도― 왜 현대시는 아이의 입장에서 말하는가
피부로서의 자아― 이소연·채길우·이다희 시인의 시
현대시의 만화·게임적 리얼리즘― 이종섶·유형진·문보영 시인의 시
■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타자는 숭고하다. 다시 말해서 대신 증언할 수 없는 타자의 고통은 숭고하며, 그 앞에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침묵과 침묵의 능력을 구분해야 하며, 때로 시인들이 침묵하는 자로부터 어떤 의미를 읽어내려 할 때, 그리고 때로 시인 자신이 도리어 침묵하는 자세를 취할 때도 각 자세가 지닌 고유성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하여 넓게 숭고한 타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숭고한 타자를 ‘향해서’ 말하는 것을 구분하도록 하자. 타자에 대한 말하기란 포리송처럼 당신의 삶을 짐짓 넘겨짚어서 대신 증언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타자를 향해서 말한다는 것은 당신을 향해 육박해가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이루는 외상적 기원과 마주하는 순간, 시인들의 시 안에서 말의 한계와 침묵의 능력이 시험받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러한 작품을 마주할 때 어디까지 당신을 ‘향하고’, 어디서 말을 중단하는 것이 정확한 침묵인지 되묻게 된다.
우리는 하나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대 시의 초점은 자기 신념이나 표현의 문제로부터 차츰 타자지향의 국면으로 이행해간다. 이때 정치성이나 타자지향성이란 타자와 손쉽게 결속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이념이나 공감의 토대가 상실되었음을 강조하고 타자와의 연대 불가능성을 문제 삼으면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변증법적 의식에 가깝다. 서효인 시인의 시에서 발견되는 스타일의 변화는 2010년대 시가 공유하는 어떠한 동요(動搖)를 예감하게 한다. 가벼운 사회성과 진지한 정치성 사이의 동요, 사랑과 혐오 사이의 동요, 신념의 지속과 타인을 위한 신념의 포기 사이의 동요. 그러한 동요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예감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동요 속에서, 삶의 고통은 인간의 마음이 안식할 거처를 탐색할 것이고, 흩뿌려진 장소들을 성좌처럼 이어봄으로써 새로운 시의 지도는 그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