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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31569849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6-02-24
책 소개
목차
Prologue
Truth
진실
외전1 첫 만남
외전2 기쁨을 주는 남자
외전3 어리석은 남자
외전4 거짓말하는 남자
외전5 그리고 어느 날Ⅰ
외전6 라일락의 꽃말
외전7 환한 남자
외전8 살짜기 옵서예
외전9 영웅의 이름을 가진 남자
외전10 한겨울 밤의 꿈
외전11 그리고 어느 날Ⅱ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배. 만났으면 해요.]
한승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8개월간의 평온했던 내 일상에 잔잔히 던져진 파문.
[내 번호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하지 않을게. 연락하지 마. 달갑지 않아.]
[우리 마무리 지을 일 있잖아요. 오늘 4시 학교 앞 카페에서 기다릴게요.]
한승후는 여전히 제멋대로다. 너는 나에게서 또 무엇을 앗아 가려 하나. 이런 문자를 받을 줄 알았다면 한국에 오지 않았을 텐데. 지헌일이 선택하라고 할 때 그냥 뉴욕에 간다고 할 걸……. 나는 급작스레 피로가 몰려와 작업하던 파일을 저장하고 노트북 전원을 껐다.
학교 앞 카페에 도착하니 4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한승후는 역시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공연장에서 보고 한 달 만인가요?”
“핵심만 얘기해.”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 딱딱하네요, 선배.”
“아니면 나 가고.”
가식을 가장하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한승후는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나서 내게 본론을 꺼내 놓았다.
“미완 피아노 소나타 완성시켜 주세요.”
“내가 왜?”
“선배 작품이잖아요.”
“네가 작곡했다며?”
“…….”
그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할 때 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한승후는 내 재능이 치가 떨리게 싫다고 하면서도 나의 곡을 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작업을 하면 한승후가 귀로 듣고 카피해서 나보다 먼저 세상에 발표했다. 도난당한 USB의 미발표곡들 역시 모두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뒤늦은 나의 발표는 세상에 파란을 불러왔다.
장르를 넘나드는 천재 작곡가 이윤. 그 실상은 표절과 도작으로 일그러진 추악한 존재. 이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온 진정한 천재 작곡가 한승후.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유일한 탈출구인 작곡을 멈출 수 없었다. 노이로제에 휩싸여 어느 샌가 모든 작곡을 악보로만 했다. 머릿속으로 음을 떠올려 악보를 그리고 그것을 품에 지니고 다니며 보호했다. 그리고 그것마저 욕심을 낸 한승후는, 최치원에게 자신의 악보를 도난당했다며 나에게서 되찾아 줄 것을 청했다. 무작정 나를 비난하는 최치원에게 건네준 그 악보가 한승후가 말하고 있는 피아노 소나타였다.
나라고 처음부터 거짓을 방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 왔다. 하지만 증거를 들이밀어도, 결백을 말해도, 돌아오는 것은 오직 비난이었다. 한 번 표절로 낙인찍히고 나자, 모든 것은 한승후의 계획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최치원은 한승후가 거짓이고 내가 진실임을 단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최치원에 대한 나의 사랑을 빙자한 집착에 기인한 것이라며 나를 외면하고 또 저주했다.
정계에 있는 나의 아버지는 도작 스캔들 이후로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낳아 준 부모조차 나를 믿어 주지 않는 슬픈 현실. 그때부터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한승후가 바라는 대로 원 없이 이용당해 주었다. 나로 인해 최치원의 사랑이 깨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자조하면서…….
“선배 내가 이렇게 나오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가만히 안 있으면?”
“치원 씨에게 이번엔 선배가 몸을 팔았었다고 꾸며 내 볼까요? 공연장에서 인사하는 거 보니까 집단 난교는 임펙트가 덜했나 봐요.”
“마음대로 해.”
최치원에게 있어서 난 한승후의 곡을 빼앗고, 협박하고, 집안의 힘을 이용해 사람을 시켜 강간을 사주한 쓰레기다. 거기에 틈만 나면 집단 난교 파티를 벌인다고도 하고. 이외에도 한승후가 꾸며 낸 거짓들은 수두룩하다. 거기에 남창쯤 더해진다고 달라질 것 있나.
“내가 못 할 것 같아요? 이건 어때요? 치원 씨 부친과도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하는 건요?”
“상관없어.”
“상관이 없어요? 치원 씨가 날 보호하기 위해 꾸며 낸 함정인 걸 알면서도 순순히 처음 보는 남자와 결혼까지 한 선배가?”
“한승후.”
“왜요? 내가 몰랐을 것 같아요?”
“까불지 마.”
최치원은 내가 한승후의 주변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만든 곡들로 충분히 예술계에 이름을 떨친 한승후도 나를 쫓아내는 것에 동조했다. 게이, 난교 파티, 도작, 거기에 동성 결혼의 올가미를 씌워 내 목을 조르려 했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들이 설치해 놓은 덫 속으로 들어갔다. 한승후는 무언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용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 오랜 첫사랑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그걸 마지막으로 내 안에서 최치원을 죽였다.
“하, 그래요 내가 선배를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트리나…….”
“이게 뭘 것 같아?”
주머니에서 작은 전자 기기를 꺼내, 보란 듯이 한승후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의기양양하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진다. 나는 카페에 들어오기 전부터 소형 녹음기를 작동시켜 두었다. 그마저도 안전을 기하려 몸에 도청기도 부착시켰다. 도청기의 수신자는 지헌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진짜 너에게 당해 왔다고 생각해?”
“…….”
“이런 증거가 한둘일 것 같아?”
짐짓 허세를 부리자 한승후가 입술을 짓깨물고 나를 노려본다. 더 이상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며 나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나한테 연락하지 마,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카페 밖 익숙한 모교의 풍경에 눈이 시렸다. 내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던 장소.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왕 외출한 김에 밥이나 사 달라고 해야지.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지헌일의 회사가 있는 지역을 말했다.
차창 너머의 회색 도시가 도무지 현실 같지 않다.
“저 여기 세워 주세요.”
택시를 일부러 목적지 근처에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어그러진 기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늦겨울의 바람을 맞으며 한창 마음을 식히는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지헌일. 그 이름 석 자가 괜히 반가웠다.
-택시 내렸잖아. 왜 아직 안 올라와?
“도청 열심히 하고 있네.”
-어디야?
“조금 걷고 싶어서 바로 앞에서 안 내렸어.”
-앞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말해 봐.
XX물산. 알았어, 거기서 멀리 가지 말고 있어. 지헌일은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멀리 가지 말라는 건 이대로 여기 있으라는 말보다 어렵다.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다, 근처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못 찾겠으면 전화하겠지. 정류장 의자에 앉아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멍하니 건너보았다. 버스, 택시, 스포츠카, 트럭.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억센 팔에 몸이 끌어 올려졌다. 아, 지헌일 아프게 왜 이래.
“왜 그…….”
“승후한테 접근하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득달같이 최치원이 날 찾아낸 걸 보면, 한승후에게 경호가 붙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잡힌 팔을 떨쳐 내고 무감하게 팔짱을 꼈다. 최치원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다. 전에는 저 찡그린 얼굴에 무던히도 속이 상했었는데……. 다행이다. 최치원을 죽이고 피 흘리던 내 마음은 이제 깨끗이 모두 아물었다.
“아는 척하지 말자고 했잖아.”
“결혼하고 잠잠해졌다 했더니 또 시작인가? 난교를 즐기던 몸이라 한 명은 부족해?”
짝. 최치원의 뺨을 사정없이 올려붙였다. 이제 네 성질 안 받아 줘, 나. 힘껏 올려친 탓에 입술이 터지고 뺨이 부어오른다. 황당하게 내려다보는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더 갈겼다.
“뭐하는 짓이야?”
“고소할 거면 고소장은 내 남편한테 보내.”
분노로 폭발하는 최치원을 싸늘하게 일별하고 걸음을 옮겼다.
“고소장은 제 비서실 쪽으로 주시면 됩니다.”
두 발자국도 채 뻗지 못했는데, 어깨를 감싸 안는 온기가 생겼다. 더 세게 때리지 그랬어. 귀에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몹시 상기되어 있다.
“남편이 번 돈 합의금으로 다 나갈까 봐 걱정돼서.”
킥킥. 오늘은 어쩐지 지헌일의 그 비웃음도 재력 있어 보였다. 나란히 걸어가는 길, 조금 전까지 쌀쌀하기만 했던 날씨가 사뭇 포근해졌다.
“지헌일.”
“그래.”
‘고마워.’
“배고파. 우리 밥 먹으러 가.”
“그래.”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오 그대여, 그대여서 고마워요. : A line from the Song ‘Panic - 정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