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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5458453
· 쪽수 : 496쪽
책 소개
목차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는 레슬리 슈야 셀바토르입니다. 셀바토르 공작이신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이 이름을 주셨고, 그건 다른 사람이 결정할 일이 아니지요. 아무리 고귀한 피라고 해도 말이죠.”
황족이든 아니든, 자신은 셀바토르 공작가의 일원이며 그 사실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레슬리의 말에 아렌도는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불과 4년 전이었다. 4년 전만 해도 바닥을 기던 아이가 이젠 자신과 시선을 맞추며 어딘가 거슬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제 동생이 이런 표정을 자주 지었지. 자신은 끝까지 꺾이지 않겠다는 표정. 제 아버지와 닮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짓밟아 보고, 가져 보고, 주지 않겠다면 빼앗아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변하셨군요. 저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만…….”
거기까지 말한 아렌도는 손을 뻗었다. 레슬리의 의사 따윈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 생각을 바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셀바토르 공녀님.”
레슬리가 그 손을 쳐 내기도 전에 누군가가 아렌도의 팔을 잡았고 그를 제지했다.
“감사합니다, 황자님.”
아렌도가 고개를 돌리자,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을 한 콘라드가 그를 바라보았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 머리는 반만 뒤로 넘기고, 금색으로 수가 놓인 검은 재킷 안에는 짙은 회색빛의 투 버튼 조끼를 입고 있었다. 셔츠에는 화려한 문양의 카라링스를 달고 있었는데, 커프스와 한 세트인 듯, 라일락빛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와…….’
늘 입던 성기사단 제복이 아니라서 그럴까. 어쩐지 너무 달라 보여 레슬리는 잠시 화도 잊고 콘라드를 바라보았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 같아 보였다.
잠시 레슬리와 시선을 마주친 콘라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제가 없는 사이 제 파트너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계셨군요.”
여전히 그의 팔을 움켜잡은 채 콘라드는 여느 때와 같은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하, 아우님의 파트너였군.”
아렌도는 그런 콘라드의 눈동자를 지척에서 바라보며 쭉 찢어진 눈을 휘었다. 그의 푸른빛 눈동자가 기억을 더듬듯 살짝 양옆으로 움직였다.
“그래, 셀바토르 마법사님과 인연이 있었지.”
“예, 덕분에 레슬리 양과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셀바토르 공녀라고 예의를 차려 말하던 콘라드는 이번에 레슬리라고 이름을 부르며 더욱 밝게 웃었다. 하지만 황금빛 눈동자는 전혀 웃음을 띠지 않은 채 아렌도를 응시했다.
“흐음. 내가 마법사님과 친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 그런가, 아우님?”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형님.”
아렌도가 말하는 아우님의 호칭에 따라 콘라드 역시 형님이라는, 친근하게 들리는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아 그 호칭은 차갑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