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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1840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4-05-2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우연으로부터의 인연 ·· 7
그 여자
1장.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 ·· 15
2장. 도플갱어의 유혹 ·· 43
3장. 술고래뱃살 아가씨 ·· 92
4장. 악마와 귀공자 ·· 129
5장. 가장 행복할 때 ·· 179
그 남자
6장. 사랑하자, 다시 ·· 216
7장. 성희롱 무한대 ·· 254
8장. 비밀인 것조차 몰랐던 비밀 ·· 285
9장. 진실은 네게로 흐른다 ·· 339
에필로그 1.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 374
에필로그 2. 널 사랑해서 다행이다 ·· 381
외전. 잘 자…… ·· 389
저자소개
책속에서
녀석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내 첫사랑이자 내 기억의 반이며, 내 영혼의 일부와도 같은 녀석이.
하지만 녀석은 내 존재를 알고나 있을까? 아니,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원래 받은 쪽은 잊지 못해도 주는 쪽은 쉽게 잊게 마련이다. 사랑을 받은 건 나였고, 주는 건 녀석이었기에 아마도 녀석은 날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난 아기 새가 어미 새를 쫓아다니듯 녀석을 쫓아다녔고, 녀석도 날 새끼 돌보듯 보살펴 주었으니까.
“넌 털털해도 너무 털털해. 남자들이 동성인지 착각할 정도니까.”
“이렇게 예쁜 남자애 봤어?”
“솔직히.”
친구가 걸음을 멈추고 녀석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녀석도 걸음을 멈추고 뽐내듯 턱을 치켜들었다. 나는 괜스레 휴대전화를 만지작 만지작 딴청을 피우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넌 예쁘다기보다는 좀 귀엽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못생겼단 뜻이냐?”
“아니, 못생겼다기보다는 귀엽게 예쁜 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딱히 못생겼다고 하긴 그렇지만 못생겼다는 뜻이냐?”
녀석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목소리를 깔았다. 녀석의 말에 난 웃음이 터질 뻔해 황급히 돌아섰다. 자칫 내 존재를 들킨 뻔했다.
그들이 걸음을 재촉하자 나도 다시 그들을 따라갔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춰지질 않는다.
다시 만난 단여울.
마치 그 사실은 잃어버렸던 내 일부를 되찾은 기분이랄까? 설렘과 흥분으로 심장이 팽창해 뻐근할 지경이다.
“두고 봐. 이제 곧 대학생이 되면 절절한 사랑을 해 보이고 말 테니까. 흥!”
녀석이 친구에게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친구는 어디 해보라는 듯 큭큭, 웃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 내 존재를 알릴까? 나를 기억하는지 확인해 볼까?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내게도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숨쉬기도 벅찼다.
-누가 너 괴롭히면 나한테 다 말해! 내가 다 해치워 줄게. 앞으로는 나만 믿어!
-너 싸움 잘해?
-물론이지. 우리 아빠가 합기도 관장님이야! 그래서 나도 싸움 잘해.
-그래도 넌 여자잖아.
-여자라도 난 싸움 잘해. 나 못 믿어?
-아니, 믿어.
-너 엄마랑 떨어져서 할머니랑 살지? 그럼 내가 엄마 대신 널 보살펴 줄게.
-진짜?
-진짜로! 앞으로는 여울이 엄마라고 불러. 나 밥도 잘해!
-나 밥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내가 한 밥은 진짜 맛있어! 울 아빠도 진짜 맛있다고 했는데?
-그래?
-믿어봐!
-알았어. 믿을게. 앞으로도 계속 너만 믿을게.
-으하하하.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다. 그 기억 속에 여울인 언제나 내 손을 잡고 다니면서 날 보호해 주었다. 입이 짧은 내가 이상하게도 여울이 집에서, 녀석과 함께 먹는 밥은 잘도 먹었다. 할머니도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실 만큼.
녀석을 따라 합기도를 배우고, 녀석을 따라 밥을 먹고, 녀석을 따라 뛰어놀고, 녀석을 따라 잠을 자고…….
그렇게 나는 건강해져 갔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나는 맡겨졌던 할머니 댁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로는 녀석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난 늘 언제나 녀석과 함께였다. 내 맘속에서 녀석은 한 번도 잊힌 적이 없다.
내게 이성은 단여울 하나뿐이었고, 언젠가 반드시 녀석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내게 어미 새 같았던 녀석을 찾아 앞으로의 기나긴 인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이런 내 생각을 아는 형제와 친구들은 순진한 소년의 이상(理想)으로 치부했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두고 보라지. 단지 이상(理想)으로 끝나는지 아닌지를.
대학 면접까지 끝난 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녀석을 본격적으로 찾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녀석과 딱 마주쳤다. 내가 이렇게 운이 좋았던 놈이었나. 하늘이 내게 이렇게 후한 인심을 베풀다니.
녀석과의 재회를 위해 준비할 게 있었다. 오늘 저녁, 녀석이 있을 곳을 알았으니 그때까지만 재회의 기쁨을 미루자. 녀석에게 줄 것이 있었다. 그동안 녀석을 생각하며 써왔던 일기장. 아무도 모르는, 오로지 녀석만을 위한 나의 일기장. 그걸 가지고 와야 했다.
녀석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그동안 내가 널 쭉 생각해 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기장을 건네면 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