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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55423264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15-07-30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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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실 이식은 개화에 송두리째 미쳐버린 건 아니었다. 나이 어린 민영익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모름지기 얌심 나는 것도 아니었다. 밑바닥에 엎드린 무지렁이건, 지체 있는 양반이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터득한 것이다.
사람들이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나서야 개화든 척화든 화두에 올릴 일이었다. 이것은 비단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호혜롭고 평등한 질서가 있어야만 그 나라에 몸 붙여 사는 백성들이 안락해 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백성 개개인은 나라의 근본이니 지위 고하 없이 그 삶이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적개심에 불타는 논객들은 야수처럼 위험할 뿐이고, 야수의 습성대로 처신하는 그들이 중전마마도 시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열이 주저앉으며 주문을 외자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무리들의 입에서도 일제히 주문이 일었다.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재차 총성이 일었고 총탄이 그들 귓밥을 스칠 듯 날아갔다. 아이쿠! 한 사내가 나뒹굴었다. 궁궁을을, 궁궁을을…, 고의 춤이나 저고리 섶에 찬 부적을 떠올렸다.
“진격, 진격!”
오뚝이처럼 일어선 태열이 앞으로 내달으며 소리쳤다.
“탐관오리를 잡아야 한다! 왜양놈을 죽여야 한다!”
그를 뒤따르는 젊은 남정네들이 무기를 부르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향교 뒷담에서 다시 총성이 콩 볶듯 일었다. 퍽 퍽 썩은 짚단처럼 옆 사람이 쓰러졌다. 핏방울이 튀었다.
“상것을 누가 만든 것입니까? 하늘입니까? 양반과 상것이 도대체 뭣이 다르다는 겁니까? 상것은 날 때부터 표를 달고 나옵니까? 다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면 반상의 위치도 바뀌는 법이지요. 지금 상것이 옛날에는 거들먹거리는 양반으로 행세한 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서?”
“하늘의 이치에 맞게 사람을 바꾸면 상것도 사람 구실을 하게 됩니다. 저도 못난 흰고무래 새끼로 태어나 더럽고 서러운 인생 어찌 살아가야 하나 막막해 하다가 이 이치를 깨달았사온데 한번 알고 나니 세상이 밝아지고 초목이 비로소 푸르러 보였습니다. 어른께서도 어풀 이 이치를 받아들이십시오. 떡두꺼비 같은 자식들한테도 한 평생 그 탈을 쓰게 하실 겁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