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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6302926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15-01-30
책 소개
목차
제2장 녹림의 계(計)
제3장 죽원(竹園)
제4장 별이 흐를 때
제5장 귀(鬼)의 전야(前夜)
제6장 흑선
제7장 정박(碇泊)
제8장 선상(船上)
제9장 투야(鬪夜)
제10장 고요한 비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량은 조용해진 무염을 보았다.
저리 앉아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걸까.
조금 전 사량을 얕은 잠에서 깨게 한 것은 신음 소리였다.
잠귀는 밝다. 아버지를 잃은 뒤 제일 예민해진 것이 잠귀였다. 밤에 누가 성을 야습할지 몰라 잠들 수 없었고, 또 지켜줄 이가 없는 처지라 더더욱 그러했다. 누군가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알아채고 숨을 수 있도록 조심하다 보니 잠귀만 밝아졌다. 정말 담을 넘어 들어와 납치하려 하는 자들도 있다 보니, 더 밝아졌다.
그렇게 깨어났을 때 들린 것은 헐떡임과 고통의 신음, 그리고 이어지는 부름.
‘아버지.’
들어가 볼까, 깨워야 하나, 그리 생각할 때 신음이 멈추었다.
잠시 고요하다가, 그가 짧은 고함과 함께 일어나 휘장을 걷었을 때는…… 아주 놀랐다.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의 태도가 어떠했든 간에, 이 남자의 마음이 변하면 이 남자를 상대로는 칼을 찔러 넣을 틈도 도망칠 순간도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태 만난 그 어떤 남자보다도 강한데, 사량은 여기로 오는 내내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모르는 사람인데, 어떤 남자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그랬다.
아버지의 오랜 벗이든, 공손히 대해왔던 어르신이든 아버지를 잃은 뒤에 깨달은 것은 그들 역시 욕망을 가진 인간이며 자신은 철저하게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믿지도 말아야 하는데, 원망하며 미워하여 눈을 흐리게 해서도 안 된다.
마음은 거두고 그들이 되어 생각하자.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너무 좋게도 나쁘게도 생각하지 말고 거듭거듭 되짚어보며 더 옳게 더 바르게 택해야 한다.
그러고 살아왔다.
소망도 바람도 비추지 말자고, 기대도 말고 설레지도 말라고, 몇 번이나 그리 말하며 살아왔건만.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조금 전 혼란하고 복잡해 보이던 무염의 눈은 지금 고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앞에 있는 남자는 투귀도, 화양의 공자도, 장수도 아닌 그저 커다란 막무염일 뿐이다.
위협적이지도, 강하지도 않은, 그냥 막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