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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67903310
· 쪽수 : 612쪽
· 출판일 : 2025-11-15
책 소개
목차
꽃이 한창인 숲 · 7
중세에 한 살인상습자가 남긴 철학적 일기의 발췌 · 50
담배 · 63
하루코 · 82
서커스 · 133
원승회 · 144
날개—고티에풍의 이야기 · 165
리큐의 소나무 · 181
크로스워드 퍼즐 · 201
한여름의 죽음 · 228
불꽃놀이 · 288
달걀 · 306
시 쓰는 소년 · 324
바다와 저녁노을 · 341
신문지 · 355
모란 · 365
다리밟기 · 372
귀현 · 396
온나가타 · 430
백만 엔 전병 · 463
우국 · 484
달 · 515
포도빵 · 538
빗속의 분수 · 560
작가 해설1 · 572
작가 해설2 · 579
옮긴이의 말 · 586
미시마 유키오 연보 · 598
리뷰
책속에서
그는 어떤 때는 어른으로, 때로는 어린애로 받아들여진다. 그건 그에게 확실한 뭔가가 부족한 탓일까. 아니, 생각건대 소년시절에는 다른 어느 시기에서도 찾기 힘든 확실한 뭔가가 존재하고, 그는 그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싶어 끙끙거린다. 그것이 성장이다. 그는 마침내 이름을 부여한다. 성공이 그를 안심시키고 자긍심을 높여준다. 하지만 이름이 주어졌을 때, 한순간에 그 확실한 뭔가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다. 게다가 그는 그렇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즉 그는 성인이 된 것이다.
—유년은 단단히 봉인된 상자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소년은 그것을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한다. 뚜껑은 열렸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 그는 깨닫는다. ‘보물 상자란 이런 식으로 항상 텅 빈 것이구나.’ 그는 그로부터 자신이 세운 정리定理를 더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즉 그는 ‘어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상자는 과연 텅 비었던 것일까. 뚜껑을 열자마자 뭔가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이 달아나버린 건 아닐까. _『담배』
S역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잠시 후에 교외 전차 승차장 쪽에서 환한 살구색 우산이 다가왔다. 둘이 한 우산을 쓰고 있었다지만(그들은 길가 한쪽에 서 있는 나를 아직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 대단한 비도 아닌데 거의 뺨이 맞닿을 만큼 바짝 붙어 있었다. 머리채가 둘 중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질투는커녕 그 정경은 오히려 내가 미치코와의 첫 밀회를 기다리는 처지라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나를 매혹했다. 그것은 뭔가 단적으로 쾌락의 인상에 가까웠다.
그렇게 바짝 붙었어도 역시 우산 하나로는 무리였는지 가까이 다가올수록 마노색 우산 자루를 잡은 하루코의 손이 하얗고 촉촉하게 빗물에 젖어 차가운 요염함을 풍기는 게 보였다. 우산 속에서 밝은 살구색 천의 빛을 받은 아름다운 두 여자의 얼굴이 삐져나올 듯 밀치락달치락하는 모습은 마치 풍성한 과일 바구니 같은 느낌이었다. _『하루코』
떼쟁이 무쓰오가 울음을 터뜨렸다. 무쓰오는 여주인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깜빡 잊은 게 생각난 듯 떨궈놓은 생후 일 년 남짓한 외둥이였다. ‘만키네’는 새로 개업한 가게다. 부부가 따로 주거지도 없이 고용인과 함께 가게에 입주한 결과, 오늘처럼 바쁜 날에는 아기 울음소리를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여주인은 아이 보는 미요를 불러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놀다 오라고 말했다. 용돈도 조금 집어주었다.
미요는 열여섯 살이다. 몸집이 작아서 열네 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조시에서 태어나 도쿄 숙부 내외의 양녀가 되었으나 숙부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침 집안 살림도 힘들어진 시기였기 때문에 ‘만키네’의 아이 돌보미로 일하러 나온 것이다.
(…) 미요는 날마다 이 아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깨에 멘 띠가 하루하루 더 세게 조여오 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무거워질지, 생각하면 끔찍했다. 무릎 위에 올려두고 바라볼 때는 귀여운 아기지만, 등에 업고 있는 동안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미요는 등짝의 아이를 잊어버리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대신, 무슨 생각을 하든 그 ‘무게’가 생각 속에 섞여드는 것만 같았다. _『리큐의 소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