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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56331063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16-08-12
책 소개
목차
1. 시간이 멎은 날에 7
2. 학교생활의 정석 19
3. 마리 28
4. 하찮은 날은 흐르고 39
5. 가출은 가출을 낳는다 52
6. 어쨌든 살아간다 71
7. 조각가 옆 소리꾼 88
8.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110
9. 천지도인이 거기 있었으므로 127
10. 과거로부터 온 문자들 150
11. 죽음과 삶은 가까이 있고 166
12. 보이지 않는 그 너머 186
13. 이제 시작이다 209
작가의 말 229
저자소개
책속에서
-야, 뭐 해?
그놈이다. 심장에서 덜컥, 하는 소리가 난다. 온몸이 서늘해지면서 닭살이 돋는다. 서로 마주하지 않은 단문의 문자만으로도 나를 떨게 하는 이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도 나를 대신해 주지 않는 시간이 말없이 흘러간다. 문득 외롭다. 서랍 속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 지갑 안엔 만 원짜리 몇 장이 더 있지만 꺼내기 싫다. 흔적이 남지 않는 이런 사소한 반항이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인 동시에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깎아 나갈수록 얼굴의 윤곽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딘지 낯익은 얼굴이 내 손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현실보다 더 예리하고 날렵하면서 강해 보이는 얼굴, 냉혈한 같은 인상을 풍기는 남자가 광대뼈를 다듬는 내 손길을 쳐다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칠 것만 같은 얇은 입술도 음영이 드러나도록 세밀히 깎는다. 인중에 홈을 파고 나서 얼굴에 대고 입김을 후, 분다. 가만히 바라본다. 조각상의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한 차례 침을 퉤 뱉는다. 송곳으로 광대뼈 쪽을 꾹꾹 눌러 점을 만들어 간다. 깔끔하고 냉정한 얼굴에 수많은 주근깨가 생긴다. 오른쪽 볼에 줄을 긋고 꿰맨 자국을 만든다. 이제 남자는 어딘가 덜떨어진 깡패처럼 보인다. 그제야 속이 후련해진다. 이 조각상의 이름은 ‘똥철이’다.
마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는 척하지만 발가락 꼼지락거리는 게 이불 속에서 느껴진다. 잠들기 전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동안 하는 마리의 버릇.
엄마 아빠를 생각할까. 집에 언제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역 앞에서의 일들과 지금의 이 생활에 대해서, 소리를 하는 자신에 대해서.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인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아까 저쪽으로 가라고 해서 삐졌을까 하고 생각할까? 삶은 건너갈 수 없는 거대한 강 같다는 생각……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