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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346821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6-03-30
책 소개
목차
펴내는 글 04
발문(跋文) -이승훈 307
1부 무속의 피
무속의 피 14
첫 번째 재수굿 46
신을 따르는 길 50
애동 제자에게 보내는 말 56
수유리에서의 삶 62
우이동 도선사에서 67
번동 이보살과의 사연 71
국숫집 언니 사연 77
보따리 장사 82
기생만신 초대 89
기도의 길과 애동제자의 설움 93
삶의 깨달음 95
생선장수 신아들 96
백일기도, 파게 101
수락 굿당의 인연 104
2부 대물림 무당의 통곡
신굿의 선택 112
대물림 무당의 통곡, 기억에 남는다 115
가슴 아픈 신굿, 가족의 통곡 120
무당이 된 슬픈 삶 125
아주 별난 꿈 129
신이라면 이럴 수가 있을까 132
우리 어머니 한 맺힌 사연 137
가는 것도 인연 141
우리 신딸 살려주세요 144
아버지가 그리워 149
무당 된 것도 업보인가요 153
할머니의 동토경 159
3부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무당의 길
암 판정과 신의 벌전 164
무당의 춤은 결코 뮤지컬의 댄스가 아니다 169
애동 제자의 길, 뚝대를 몰라 헤매다 174
굿보다 치성이 좋아 180
신을 받고 후회한다면 184
버려둘 수 없는 도량, 내 마지막 사명 189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무당의 길 192
죽음 끝에서 피어난 기적 196
정월 초하루 축원문 202
관우신당, 마지막 도전의 문을 열다 206
학도암에서 인왕산까지,신에게 올린 하루 211
신내림 앞에서 멈춘 눈물 216
신령님, 왜 나를 홀로 두십니까 221
무궁화 꽃이 피면, 출판 기념회 226
4부 기적 같은 신딸의 목소리
비와 눈물, 그리고 기도 234
비 내리는 감포, 대왕암 앞에서 238
돈의 유혹, 신의 길에서 찾은 깨달음 242
기적 같은 신딸의 목소리 249
갑상샘암 환자의 대수대명 굿 254
외할머니의 진적맞이 258
천마산 기도터 263
가난을 극복하려고 268
아련히 떠오르는 친할머니, 유명 여법사 272
천마산 장군당에서 진적맞이 277
신제자의 슬픔은 여기서부터였다 284
천마산 장군굿당, 떠나보낸 신령님의 울림 289
에필로그 299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요양원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늘 소파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인지 한 번도 깊고 단단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습관처럼 전등은 꺼지지 않았고, 불빛이 방안을 희미하게 물들였다. 나는 늘 불을 켜둔 채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빛은 잠을 방해했지만, 이상하게도 어둠은 더 두려웠다. 설친 잠에 길들어 아침이면 몸은 늘 무겁게 가라앉았고, 머리는 안개처럼 흐릿했다. 남들처럼 낮잠을 청하거나, 어디서든 다리 쭉 뻗고 누워 잠시라도 쉴 줄 아는 성격은 아니었다. 늘 긴장 속에 앉아 있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우리 사무실은 특히 더 시끄러웠다. 길가에 자리한 상가 2층 건물이라 창문 너머로 끊임없는 차 소리가 밀려들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차의 경적, 상점 문 여닫는 소리까지 온종일 이어졌다. 고요라는 단어는 그곳에서 사치였다. 게다가 요즘은 펜션 일이 몰려, 앉아 쉴 틈조차 없었다. 몸은 점점 지쳐가는데도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약통을 들여다보니 혈압·당뇨약이 떨어진 지 벌써 닷새가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몸이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리가 떨리고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 손끝이 차갑게 굳어갔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계단을 내려서는데, 갑자기 다리가 꺾이듯 힘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신음을 흘렸다.
그 순간 선생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지만, 확인할 힘조차 없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눈앞이 빙빙 돌았다. 할 수 없이 친구 양선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혈 압약 좀 가져다줘.” 그 한 마디가 간신히 흘러나왔다. 약을 먹고 나서야 조금 숨이 고르게 이어졌다. 급히 약국에 들러 우황청심환을 사서 마셨다. 달콤한 약 냄새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조금 안정을 되찾았다.
이내 택시를 불러 아산내과로 향했다. 접수를 마치자 원장이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물었다.
“왜 이렇게 창백합니까? 금식이라도 했나요?”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어지러워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즉시 간호사를 불러 세웠다. 심전도, 피 검사, 가슴 X-ray까지 서둘러 진행했다. 그 순간부터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쓰러지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갑작스러운 두려 움이 밀려들었고, 머릿속은 무언가 정리해야 할 것들로 복잡해졌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원고, 정리되지 못한 마음들,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약속들….
의사가 다시 들어와 말했다.
“영양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우선 수액부터 맞으셔야 합니다.”
차갑게 스며드는 수액 줄을 팔에 꽂고 연거푸 주사를 맞았다. 피로에 전 몸이 조금씩 진정되었고, 흐릿하던 의식이 되살아났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하루는 너무 길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하루가 마치 한 달처럼 무겁게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 밤은 더디게 흘렀다. 불빛이 꺼지지 않은 방 안에서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다. 비약적인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부터 오늘의 현실까지 줄줄이 흘러나왔다. ‘내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의사에게 영양실조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 그 말이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순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랐다. 만약 가족이 내 곁에 있었다면, 마주 앉아 밥 한 끼라도 함께 나누었더라면, 밥이든 죽이든 함께 먹으며 가정다운 생활을 이어왔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웃으며 나누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이 내겐 사치였고,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텅 빈 속을 안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_본문 ‘신령님, 왜 나를 홀로 두십니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