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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6411741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0-11-02
책 소개
목차
1. 안녕하세요. 선생님
2. 약속이니까요
3. 가짜 연애
4. 넌 나한테 절대 여자 아니야
5. 싱숭생숭
6. 돌겠다. 너 때문에
7. 기간 한정 연인
비하인드 컷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샘. 나랑 연애할래요?”
서준은 저를 올려다보는 당돌하며 발칙하기 짝이 없는 까만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그와는 네 살 터울인 버들은 낭랑 18세였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났을 때가 아닌가 싶은데, 행동이나 생각하는 것으로 봐선 아직 사춘기도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어린애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철딱서니가 없었다.
“내가 지금 너랑 그런 걸 하면 손목에 쇠고랑 차고 구치소 들어가야 하거든? 헛소리 그만하고 그대로 백해서 집으로 얌전히 들어가라.”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버들의 집 대문 앞이었다. 서준은 방금 그녀의 과외 선생 자리를 그만두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 집에 오는 건 오늘로써 완전히 끝이었다.
다시 말해, 둘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연애니 뭐니 하는 소리를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3개월. 서준은 급전이 필요했다. 다음 학기 학비가 없어 학업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 처한 동기를 돕느라 제 학비를 써 버렸던 것이다. 결국 그는 부모님 몰래 고액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고액 과외를 그 나름 꽤 열심히 심혈을 기울여 해 왔었다.
하지만,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버들의 성적을 위로 끌어올려 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친구와 놀기 바쁜 그녀를 붙잡아 책상에 앉히기 위해 간 쓸개 다 빼 놓고 얼마나 많은 감언이설을 퍼부었는지 모른다. 물론 효과는 그다지 없었다.
결국, 그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천연덕스러운 그의 성격으로도 버들은 감당하기 버거운 상대였다.
늘 조마조마하던 차에 버들의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평탄한 인생을 지향하는 버들의 성적표는 고집스럽게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나마 추락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어차피 딱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언제 그만둘지 시기를 가늠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양심상 더는 가르칠 수가 없다며 과외 자리를 내려놓고 나오던 길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또 뭘 하자고?
“샘이랑 연애하면 저 공부 엄청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협상이라도 해 보겠다는 듯 버들이 의미심장하게 입술 끝을 올리며 쫑알거렸다. 저 동그란 머리통에 알밤 하나만 딱 먹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준이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중략)
“뭐가 문제예요? 내가 미성년자라서?”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럼 2년만 기다려요.”
“내가 왜.”
“기회는 줘야죠. 그래도 나한텐 샘이 첫사랑인데. 이대로 포기할 순 없잖아요.”
말간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며 다소 억울한 투로 말하는 버들을 그가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쯧쯧.”
그가 짧게 혀를 찼다. 이 끈질긴 고집으로 공부를 했으면 등급이 몇 계단은 상승했을 텐데. 또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고 있으니 한심할 수밖에.
서준은 마지막으로 철딱서니 제자에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짝사랑은 원래 이뤄지기 힘든 거야. 꼬맹아.”
“이뤄지게 만들면 되죠.”
똥고집.
“좋아, 그럼 네가 아주 그럴듯한 모습의 성인이 돼서 날 찾아오면 그땐 한번 생각해 볼게.”
“샘이 있는 곳이요? 거기가 어딘데요?”
“세한 종합병원.”
서준은 세한 의대에 재학 중이었다. 지금은 예과 2학년이었고. 나중엔 세한 종합병원의 써전이 되어 있을 것이다.
“환자 아니고 의료진으로 와야 받아 줄 거야.”
그가 버들은 절대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조건을 내걸었다. 지금 성적으로는 그가 재학 중인 대학에 들어오는 것도 힘들 그녀가 세한 종합병원의 의료진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조건을 내걸면 그냥 포기하고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요. 그럼. 그땐 절대 도망치기 없기에요.”
버들이 반짝 눈을 빛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서준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설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서준은 이내 도리질 쳤다.
그가 아는 한 선우버들은 결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장담하는데 그녀와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서준이 흔쾌히 손을 내밀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샘. 기다려요. 내가 갈 때까지. 꼭.”
맞물린 손가락을 흔들며 버들이 해맑게 웃었다. 여태 본 적 없는 가장 화사한 미소였다. 그 웃는 낯이 그의 눈동자에 깊이 박혀 들었다.
‘뭐가 이렇게 눈부셔. 기분 이상하게.’
그의 미간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