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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7282289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17-05-15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5
1부
가을을 수선하다 12
폭우, 그 끝 14
올빼미 16
일곱 마디 ―입관식 18
보리, 분얼의 가계家系 20
바람에게 세놓다 22
음지식물 24
기억을 복원하다 26
생을, 분실하다 28
바다 고물상 30
꽃문양 팬티 31
아가미 32
할복 33
거룩한 탄생 34
불면증 35
부딪친다는 것은 36
영광, 대한민국 37
깻잎을 재우며 38
송판 39
2부
기억의 힘 42
벽 속의 사막 44
새만금으로 가는 버스 46
수면 무호흡증 48
대추 50
우화羽化 51
저녁의 흘레 53
사흘 54
바람의 뿌리들 55
드라이플라워 56
서리 거듬 58
먹는다는 것은 59
아버지의 주전자 60
뼈의 집 62
새 63
치어들을 위하여 65
길 66
선풍기 68
꽃을 지우던 날 69
3부
세월을 담는다 72
바퀴의 기억 73
나는 햇살과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다 74
전생 76
그들은 어리다 77
전선수리공 ―아멘 78
벽화 79
초복 80
옹도 81
귀가 밝다 82
가벼워지는것들에 대하여 83
검은장미꽃 84
국화 85
모자母子 87
밥심 89
가시 90
들깨를 털며 91
벌초 92
4부
환절기 94
달항아리 95
모르스부호 96
천상 음악회 97
질량 계산법 99
어떤 죽음 100
맹삼숙 씨 101
유채꽃 102
모든 소리는 직선으로 온다 103
겨울 연밭 104
밤비 105
떡 두꺼비 106
바람의 통로 107
강구항 109
친환경 볍씨의 말씀 110
출입금지에 대한 상상 111
소낙비 112
용접 113
해설세상 밖의 때를 씻어내는
수류水流의 언어오홍진 116
저자소개
책속에서
가을햇살에 잘 익어 구수해진 볏짚으로 토담을 수선한다
이제는 오래된 장처럼 곰삭아 정겨운 늙은 아내의 잔소리도
몇 가닥 솎아 함께 볏짚사이에 밀어 넣고 촘촘하게 이엉을 엮는다
토담 위 용마루가 황룡처럼 넘실넘실 헤엄쳐 오르면
팔짱끼고 구경하던 아낙들의 웃음이 맷돌호박만큼씩 달게 퍼질러지고
오래전 속내가 투박했던 한 사내를 따라 무작정 뛰어넘었던, 저기 저 담
댕기머리 풋사랑 혐의들이 하나 둘 갈볕 아래로 구수하게 풀어진다
노인은 담 위로 올라앉아 왼새끼 꼬듯
그 옛날 비밀스런 월담의 이야기까지 속속 끼워 지붕을 얹는다
크고 작은 사연들이 모여서 완만한 생을 이루는 돌담,
누구는 새색시 적 시집살이 힘들어 저 담을 넘었다 하고
또 누구는, 이웃집 청상과부의 속살이 그리워 군침을 다시기도 했다던
돌담은 우리들의 과거를 모두 함구한 채, 함께 그렇게 둥이 굽어간다
햇살이 먼저 낸 길로 담배 한 대 문 노인의 엉덩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바람의 모퉁이로 툭, 툭, 떨어져 내렸던 감꼭지가 오후의 시간을 끌어 덮는
그런 날 장독대는 목화솜 같은 햇살을 깔고 앉아 오래도록 졸았다
그 꿈 언저리, 설거지물 내다버리던 어무니의 토담집 너머에서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던 순이가 봇짐을 안고 기웃, 서성이기도 했으리
어느 집, 오랜 비와 바람으로 한쪽이 씰그러진 담장을 수선한다
그 곁에서 여인들은 풋내 나는 추억들을 솎아내며 벙싯벙싯 싱거워지고
이제는 등 굽은, 동네 처녀총각들의 무수한 도발을 오래 묵인해 온 태양이
능청스레 허리를 펴며 저녁 먹으러 서산을 넘는, 저녁마을
----[가을을 수선하다] 전문
주방에서 무심코 과일을 깎는데
거실, 그녀의 등 뒤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나보다?
주름진 저 손안에서 흘러나오는 긴 소리의 끈들
산골 작은 도랑의 얼음을 껍질처럼 과도로 벗겨내면
샘물의 속살에서도 저런 소리가 날까?
칠월, 태양이 꺼진 잿빛 허공 어디쯤
구름들의 모서리에서 뛰어내린 이슬비가 폭우로?변하던
어느 여름의 우기였을 것이다,
산골도랑의 바위를 굴리고 화전 밭을 뭉개고
산 아래 마을을?초토화 시켰던 폭우도,
그랬다 붉은 울음들이 삼키고 떠난 자리들은 모두
길 아닌 길을 허옇게 포태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녀의 사내가 저녁밥상을 내던지듯
골절된 세상의 꿈들을 부셔버렸을 때도
어머니, 그녀의 가슴 안쪽으로 붉은 물이 범람했었다
맥없이 뿌리 뽑힌 계절도 소화불량에 걸린 하늘도
상처 입은 것들 모두를 안쓰럽게 끌어안고 이제껏 살아온
저 고요한 뒷모습은, 얼마나 무수한 체념들을 안으로 삼킨 것일까
어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고
밖은 어느 새 찬바람 부는 시월,
나는 붉게 익은 사과 속 단물이 그리워 다시 과도를 든다
문득, 껍질이 잘려나간 속살마다
노모의 침묵이 벌레처럼 웅크린 채 쓸쓸히 돌아누워 있다
----[폭우, 그 끝]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