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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러셀/비트겐슈타인
· ISBN : 9791157831715
· 쪽수 : 512쪽
책 소개
목차
서문
1. 문제와 방법에 관하여
2. 역설의 도시, 합스부르크 빈
빈 생활의 이중성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합스부르크 왕가
슬라브 민족주의를 낳은 칠리 사태
프란츠 요제프 황제
빈 부르주아의 특징
노동 계급의 생활 조건
아들러와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뤼거와 기독사회당
쇠네러와 게르만 민족주의 정당
헤르츨과 시온주의
합스부르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 준 레들 사건
빈의 불안에 대한 슈니츨러의 문예적 진단
빈에서의 자살
3. 카를 크라우스와 빈의 마지막 나날
어린 시절과 가족
《횃불》과 논쟁
매춘, 성, 그리고 여성성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
바이닝거에 대한 달라고의 견해
이성에 대한 환상의 우위
‘정신분석학이라는 정신질환’
언론에 대한 비판
‘젊은 빈’과 탐미주의
삶과 작품의 일치를 보여 준 알텐베르크
호프만슈탈과 라인하르트
오펜바흐와 오페레타
네스트로이와 시의 극장
언어, 사실, 가치
4. 사회 비판과 예술 표현의 한계
로스와 장식과의 투쟁
쇤베르크의 화성 이론과 작곡의 논리
호프만슈탈과 말할 수 있는 것
로베르트 무질, 철학적인 소설가
5. 언어, 윤리, 그리고 표상
마우트너의 언어비판
표상
감각적 용법으로서의 표상
공적 용법으로서의 표상
칸트와 이성의 한계
칸트 비판자로서의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와 간접적 의사소통
톨스토이와 인생의 의미
6. 다시 생각해 본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 가문과 비트겐슈타인
해커의 <쇠렌 키르케고르와 내재성의 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모델 이론과 러셀의《수학 원리》
윤리적 저술로서의《논고》
피커에게 보낸 서신과《논고》의 의미
논쟁으로서의 철학
침묵
7. 인간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후기 철학
톨스토이적인 삶
철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태도
러셀과 무어, 그리고 철학의 혁명
비트겐슈타인과 빈학파
간접적 의사소통을 통한 가르침
삶의 형식
행동으로서의 언어
《논고》와 《탐구》의 연속성
8. 직업주의와 문화: 현대 사조의 자살
1918년 이후의 오스트리아와 유럽
비트겐슈타인의 몰역사주의
빈학파와 사회의 재구성
문화의 할거주의
파울 힌데미트와 실용음악
바우하우스의 데카르트적인 형식주의
‘직업적인 철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의 미래
9. 후기: 소외의 언어
오늘날의 카카니아 사회
현대적인 초강대국에서 개인과 사회
역사의 철폐와 그 귀결
정체상의 외양과 정치적 현실의 괴리
의사소통과 유령 언어게임들
혁명의 의미
주석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빈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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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지독한 바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는 도저히 우리를 가르칠 수 없다며 대놓고 비난했으며 가끔은 자기가 이해시키려 애쓰고 있는 요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 줄 수 없어 절망했다. (…) 지금 회고해 보건대, 결국 비트겐슈타인과 케임브리지 학생들 상호 간의 몰이해가 진짜였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몰이해가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확신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그렇게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것은 아니었는지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논의할 이야기가 실제로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면, 그 타당성이 내포하게 될 한 가지 사실은, 영어권 청자들은 비트겐슈타인에게 접근할 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관들로 인해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당시에 우리는 그를 분열된 인간, 즉 전무후무할 정도의 독창적인 기법을 지닌 천재적인 영어권 철학자로서, 우연찮게 극단적인 도덕적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에 몸소 천착하게 된 사람 정도로 생각하였다.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은 오스트리아 저명인사들의 목록은 길고도 유별나다. 통계 열역학의 아버지인 루트비히 볼츠만, 작곡가의 형제로 자신 또한 음악적인 재능이 없지 않았던 오토 말러, 독일어권에서는 그 재능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던 음유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성과 성격》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한 소송 사건에 휘말렸다가 그로부터 불과 몇 달 후에 베토벤이 죽은 집에서 자살한 오토 바이닝거, 자신이 설계한 황실 오페라 하우스에 쏟아진 비판을 견딜 수 없었던 에두아르트 반 데어 뉠, 이미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알프레트 레들, 그리고 더 말할 것도 없이 비트겐슈타인의 형 세 명이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 정체성과 의사소통의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심지어 국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빈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로스는 여러 친구와 지인들에게 코코슈카를 소개했는데, 그중에는 크라우스와 알텐베르크, 그리고 예술사학자인 한스 티에츠와 에리카 티에츠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코코슈카는 그들을 모델 삼아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렸다. 코코슈카가 이 시기에 그린 그림들은 그의 작품 중 명암이 가장 어두운 것들이었고,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는 이 작품들을 자신의 ‘검은’ 그림들이라고 불렀다. (…) 코코슈카는 그들의 얼굴에서 수많은 빈 사람들의 삶이 영적인 진공 상태에 빠져 있음을 분명하게 보았다. 클림트처럼 코코슈카 역시 이런 영적인 요소를 끄집어내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