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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8160333
· 쪽수 : 212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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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탁자라고는 두 개밖에 없는 좁은 공간에 뱃사람들과 입술을 빨갛게 칠한 여자들이 작전을 짜듯 모여 있었다. 뱃사람들도 입술이 빨간 여자들도, 모두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중략) 그제서야 우리를 발견한 아빠의 눈이 토끼처럼 붉다. 아빠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뱃사람은 아직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건지, 옆에 앉은 여자의 가슴을 움켜잡고는 킬킬 웃었다. 아빠는 진짜 토끼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상 위에 놓인 반찬을 집어 오물오물 씹었다. 다시 술잔은 돌아가고 나와 언니만 얼음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투명인간의 기분이 이런 걸까?
_ 본문 중에서
그와 함께 취하는 일은 언제나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우리가 취해 침대에 나란히 누우면 놀랍게도 이 지구상에는 우리 둘만 남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큰 발소리를 내며 지구 밖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기존의 시간을 벗어나 움직였다. 평상시 일 초는 눈을 깜빡하면 사라져버리는 시간이겠지만, 우리가 취했을 땐 양팔을 천장으로 높이 뻗어 흔들고 다시 양쪽 다리를 들어올려 신나게 흔든 다음 내려놓아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간혹 중력도 사라져 매트리스 위로 몸이 뜨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때의 행동에 집중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모든 일들이 저마다 존재의 이유를 남기며 눈과 머리를 어지럽혔다.
_ 본문 중에서
네모난 식탁을 채운 우리 가족은 앞에 있는 돈가스 자르기에 각자 집중하고 있었다. 튀김가루에 쌓여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고기를 무거운 성인용 포크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창가에 앉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동그란 눈에 깔끔하게 묶은 양 갈래 머리를 한 내 또래의 아이는 몇 달 전, 부산에서 전학을 왔다. 아빠가 우체국장이라는 아이는 우체국 뒤에 정원이 넓은 집에 살았고, 언제나 깨끗한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 손에 포크를 쥔 채 반갑게 눈웃음을 지었다.
_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