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견인의 여자

Prologue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Epilogue

잘못 들은 거야.
분명 잘못 들었어.
기어이 몇 번이나 ‘잘못 들었다.’ 속으로 단정 지으면서도, 정연은 어떤 말이든 괜찮다는 듯이 평탄한 표정을 유지했다.
민환이 보고 있는 서류 한 장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결혼하라는 소리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정숙히 숙이고 있던 정연의 눈동자가 다시 민환을 본다.
숱 많은 머리카락, 남성적인 짙은 눈썹, 이지적인 눈매와 높고 곧은 콧날, 단단하고 강인한 턱선, 비스듬히 한 손을 턱에 괴고 여유롭게 손가락 끝을 톡톡 움직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지극히 편안해 보이면서 또한 완벽히 권위적으로 보인다.
“약혼식은 5월이 될 거다.”
별것 아닌 것을 처리하듯 간단히 말을 끝내는 뚜렷한 남자의 입술.
정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은 점점 움츠러들었다.
그는 항상 저를 보잘것없이 작게 만든다.
강민환. 그를 한때 천사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숨 막히게 눈부신 미소를 건네준 따사로운 천사.
그가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줄 알았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