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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542917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1-03-25
책 소개
목차
1부
땅·1 / 땅·2 / 농사꾼 /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 텃밭농부의 자세·1 / 텃밭농부의 자세·2 / 텃밭농부의 자세·3 / 분재 소나무 / 불두화 / 낫을 갈다 / 쥐구멍 / 우물 / 호미 한 자루만 있으면 / 부활
2부
모기 / 지네 / 지렁이 / 코스모스 / 어미 개 / 상추·1 / 상추·2 / 바랭이·1 / 바랭이·2 / 옥수수·1 / 옥수수·2 / 질경이·1 / 질경이·2 / 공벌레
3부
미안, 미안해 / 장미에게 공간이란 / 국화가 된 장미 / 소국 / 배설 / 맛집·1 / 맛집·2 / 무 한 뼘 배추 두 뼘 / 무의 목을 베다 / 호박손 / 늙은 호박 / 딸기 맛에 목숨 걸다 / 중노년의 부부 / 들쥐
4부
겨울바람 / 그해 겨울 / 분서焚書, 책을 불태우다 / 아궁이 앞에서 / 옆집 개·1 / 옆집 개·2 / 옆집 개·3 / 장미 / 사랑으로 / 엄마 / 포란 / 겨울 아침에 / 염원 / 나무
저자소개
책속에서
땅은 어떻게 / 저 많은 씨앗을 품고 있을까
날선 서릿발로 자라나는 / 텃밭의 풀을 보며 생각한다
베고 베어도 고개 숙이지 않고 / 쉼 없이 일어서는
죽은 씨앗이 키운 / 풀과 풀, 풀 그리고 풀
전쟁이다
격하게 치고받는 싸움도 잠시 / 이름 없는 풀들의 거센 저항 앞에 / 칼날 무뎌진 낫을 던진다
졌다
아무리 자르고 잘라도 죽이라며 / 제 목 들이미는 / 악다구니 풀을 이길 재간이 있나 / 사람의 발길 거부하는 텃밭에는 / 성난 파도로 출렁대는 / 푸른 생명이 그득하였다
- 1부 ‘땅·1’
목숨 질긴 이놈
언젠가 명줄 한번 따버려야지
벼르고 있었다
아무리 밟아도 기죽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 죽여 봐라 대드는
잡초 중의 잡초
잡놈 중의 잡놈
오늘은 이놈의 버르장이를
고쳐놓고 말 테다
단단히 마음먹고
서슬 퍼런 낫을 휘두르며
독기 품은 목소리로 을러댄다
너 이놈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 빌어라
네 운명은 이 두 손에 달렸으니
내 말에 절대 복종하라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듣고 있던
질경이놈 비장하게 대꾸한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들
무슨 희망 있겠소
당신의 노예로 사느니
기꺼이 죽음을 택하겠소
나는 자유롭게 살다
비참하게 죽으리라
신의 사악한 저주로 태어났으니
이 몸을 갈가리 찢고 잘라
산짐승 먹이로 던져
그들의 허기진 배고픔이나 달래주오
순교하리라
마음먹은 탓일까
낫으로 내려치라며
목을 길게 내민다
내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어
두 눈 질끈 감고
성난 낫 휘둘러 단숨에
그놈의 목을 자르는데
수십 수백의 까만 씨앗 흩뿌려져
거친 땅속 굳센 뿌리로 내려앉는다
- 2부 ‘질경이·2’
거센 바람에 찢겨 온몸 너덜해진 세상이
창틀에 끼인 문풍지로 바르르 떨리며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 울부짖고 있던 그해 겨울
밤은 고요하다는 비정한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어떤 야비한 삶과 고독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길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들이 앙칼진 목소리를 내며
소유권도 없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목숨 걸고 싸울 때도
밤은 어둠을 앞세워 고요하였고
광야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를 못 들은 척 외면하며
나는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을 곧추세울
위대하지만 헛된 혁명을 꿈꾸었다
해가 뜨지 않는 날은 없었고
해가 지지 않는 날도 없었다
밤은 언제나 고요하였고
어둠 속에서 나는
이루고 싶었지만 이룰 수 없는 이상과 피터지게 싸웠다
밤은 혁명의 적도 동지도 아니었다
나는 들개처럼 외로웠다
- 4부 ‘그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