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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606411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9-05-10
목차
작가의 말
끝없는 정적의 수평선
에덴의 정원사들
불만의 가을
등잔봉
결빙(結氷)
비열한 오후
전쟁과 소년
파주로 간 소녀
평범과 비범
변심(變心)
이방 여자들
남는 장사, 밑지는 장사
저자소개
책속에서
차라리 잘된 일이다.
범행의 모든 증거를 찾아 놓고도 다시 재수사하는 민용익 검사는 드디어 커다란 위업 하나를 달성한 양 회심의 미소까지 지었었다. 사실 내가 모든 범행을 이의 없이 순순히 시인하니까 초강력 범인의 대답이 너무 싱겁다는 듯 그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재차 범행에 직접적인 동기와 목적을 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차마 내가 말을 할 수가 없 다. 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저지른 그 범행 자체를 이미 내 기억에서 완전하게 지워버렸다. 그래서 그 일은 마치 꿈속에서조차 없었던 일이라고 믿고 있어 아무리 그들이 나를 추 궁해도 별달리 말이 나오질 않는다.
사실 범행 당시는 더 이상 염치없이 이 세상에 존재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 일을 끝내고 바로 죽을 작정이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은 것이다. 우선 내가 저지른 더러운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잠시나마 내가 존재했던 이 세상에 대해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의무이자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늦게 돌아와 어떤 소리 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문틈에 스티커를 붙여 꼭꼭 막아놓고 오로지 이 모든 흔적 제거 작업을 새벽까지 은밀히 진행했다.
마침내 나의 이 범행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웠다는 생각이 들자 이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까지 이 일에 몰두 하는 내 자체가 오히려 싱겁고 우스워지기까지 했다. 이젠 식사도 제대로 하고 아무 거리낌없이 잠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든 내 범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는 자체가 역겹고 솔직히 살아 있다는 게 구 차스럽기만 하다. 하긴 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