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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희곡 > 한국희곡
· ISBN : 9791158608613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0-07-10
목차
작가의 말
내 인생에 백태클
돗추렴
랭보, 바람 구두를 벗다
게스트하우스 꿈
산지포 연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 인생에 백태클
제 1 장
토요일 아침이다.
경쾌한 음악(트로트)과 함께 무대 밝아지면 공달국 집 거실.
젊은 파출부 연화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막대 걸레를 들고 청소하고 있다.
초인종이 울린다. 연화 달려가 비디오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버튼을 누른다.
파출부: 어머. (안을 향하여) 사모님, 언니 왔어요.
황금순: (안에서) 알았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며 공명지 들어온다.
파출부, 플레이어의 노래를 끄며 반갑게 맞이한다.
그는 조선족으로 한국말이 서툴다.
파출부: (호들갑스럽게) 어머 어머 어머. 눈이 부어서 못 보겠어요.
공명지: 왜 그래?
파출부: 언니 얼굴에서 빛이 나와요.
공명지: (웃으며) 이럴 땐 눈이 부은 게 아니라 눈이 부시다고 하는 거야.
파출부: 언니, 연애하는 거 맞죠?
공명지: 얘가 몇 달 안 보는 사이에 점쟁이가 다됐네.
파출부: (좋아라하며) 맞지? 맞구나. 어떤 남자예요?
공명지: 촐랑대지 말고 기다려봐.
파출부: (관심을 가지고) 언제? 아참! 가족회의 한다던데 그놈도 오늘 와요?
공명지: (놀라며) 그놈?
파출부: 앗 실수. 그 님.
공명지: (손가락으로 연화의 이마를 살짝 밀며) 그래. 그분도 오신다. 요것아.
파출부: 야호. 오늘 재수가 좋다더니. 어떤 왕자님일까? 내 가슴이 다 떨리네.
황금순: (화장 곱게 하고 안에서 나오며) 아침부터 웬 호들갑이야. 커피 내오고, 안방이나 좀 치워.
파출부: (금세 샐쭉해 하며) 예. (청소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황금순: (소파에 앉으며) 왔어? 여기 좀 앉아라.
공명지: (앉으며) 아빠는?
황금순: 운동 나갔는데. (시계를 보며) 올 시간이 되었다.
공명지: 갑자기 휴일 아침에 호출이라니? 무슨 일 있어?
황금순: 명지야. 네 아빠 좀 말려라. 집안 거덜 나게 생겼다.
공명지: 무슨 일인데?
황금순: 글쎄. 꼴에 선거에 나간단다.
*돗추렴
제 1 장
꿀꿀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대 밝아진다.
이윽고 여자의 짤막한 비명소리 들리고 잠시 후 후안이 두 손으로 월남치마를 잡아 무릎까지 올리고 어거적거리며 돗통시에서 나와 정지로 들어간다.
유옥순, 망사리와 테왁이 든 물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물질해서 채취한 파래와 감태를 마당 한쪽에 비닐 포대를 깔아 그 위에서 말린다.
유옥순: (집안을 살피며) 얘, 후안. (사이) 후안아.
후안 (소리) 예, 할머니 잠깐만요.
유옥순, 바구니에서 태왁과 잠수복을 꺼내 마루에 걸고 수돗가로 가 손을 씻는다.
수호 들어온다.
박수호: 삼촌 집에 이서수과?
유옥순: 응. 이게 누구고?
박수호: 나 수호우다. 용철이 친구 마씸.
유옥순: 응. 오래만이로구나. 경헌디 어떵헌 일이고?
박수호: 도새기 호쏠 보래 와수다.
유옥순: 우리 도새긴 무사?
박수호: 나 도새기 잡는 일 허염수게. 헌디 알동네 새 집 짓는 명호네 있잖수과?
유옥순: 명호네 무사?
박수호: 집이 다 되언 성주풀이 허젠 허난 돼지머리 필요허댄 마씸.
*랭보, 바람 구두를 벗다
제 1 장
랭보의 『감각』 노래가 흐르면서 객석 불이 서서히 꺼진다.
막이 열리면 시내의 한적한 카페.
‘낭랑 18세’ 음악이 흐르고 유미 탁자를 닦고 있다.
유미는 가벼운 지적 장애인이다.
외투를 입은 창민이 ‘카페 랭보’의 간판을 한참 보다 들어온다.
유미는 손님이 온 것도 모르고 흥에 취해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창민: 노래를 듣다가 다 끝나면 박수를 친다.
유미: (박수 소리에 놀라며) 어머, 누구셔요?
창민: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아직 영업시간 안됐소?
유미: 아녀요. 늦장 부리다 좀 늦었어요. 거기 앉으셔요.
창민: 노래 참 잘하던데 교습소에라도 다녔소?
유미: 우리 엄마한테 배운 거예요. 우리 엄마 노래 짱이에요. 시도 잘 써요. 상도 많이 받았어요.
창민: 좋은 엄마 둬서 좋겠네. 얼굴도 곱고 가수해도 되겠어.
유미: (좋아서) 히히히.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헌데, 우리 엄마가 문제예요. 이런 노래 부르지도 못하게 해요. 내가 너무 이뻐서 손님들이 잡아간다고 여기 나오지도 못하게 해요. 참 나쁜 엄마죠?
창민: 저런. 참 안 됐구만. 아까운 소질을 썩히다니.
유미: 그렇죠? 헌데, 나 불쌍 안 해요. 우리 진수가 있거든요. 날 얼마나 아껴주는 데요. 나 진수한테 시집갈 거예요.
창민: 좋겠다. 헌데 여긴 언제부터 카페가 됐지?
유미: 응, 아주 아주 오래전, 골 백 년도 더 됐을 걸요?
창민: 백 년? 예전에 병원 했던 자리 아니었어?
유미: 맞다. 맞아. 헌데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가만 어디서 많이 본 아저씨다. 텔레비전에 나왔어요?
창민: 아니. 난 일본에서 왔는걸.
유미: 일본? (하다가 자랑하듯이) 우리 눈 오면 설악산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