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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609207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1-01-20
목차
PART #1 어슬렁거리는 로봇 A Wandering Robot
PART #2 숲 사용 매뉴얼 A Manual for the Forest
PART #3 우렁찬 침묵의 숲 The Resonant Forest of Silence
PART #4 태양의 화상 Sun Burn
PART #5 수감 중인 영혼 Souls in Prison
PART #6 눈물도 물이다 Tears Are Also Water
PART #7 시 해설 A Commentary on Poems
저자소개
책속에서
하지정맥
얽히고설킨 세상살이 던져 버리고
등산배낭 달랑 메니
푸른 소나무에 달라붙은 담쟁이
외길 클라이밍 발바닥부터 기어오른다
삼발이 여린 힘줄 움켜잡고
왕소금쟁이 팔방으로 근육이 늘어나
메마른 장딴지를 파고드는 고난도 기술
눈대중으로 잘못 디디면
거북등에 영락없는 추락이다
철없이 내뿜는 갈기는
핏줄 따라 줄사다리 오르는 좁은 길
빛바랜 꿈 무서리도 단풍 드는가
다문 입술 거친 숨 몰아쉬며
허리가 휘어지도록 수직 벽 기어오르는
등 푸른 인내다
피가 거꾸로 흐르는
담쟁이가 넘겨다보는 세상 너머
힘줄에 굳은 살 박힌
삶의 흔적이 무성하다
첫눈
낮추고 나면 낮음은 없는 것이다
높이만 키우는 것이라면 높이도 없는 것
너무 낮아 높은 것은 차라리 두꺼운 것이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낯 두꺼운
서로가 서로에게 높낮이가 없다면
낮음과 높음의 경계도 허술해져
높을수록 낮아지고
낮아진 것은 높아져
강물보다 낮은 폭설은 지루하다
오묘한 인간의 곧바른 물줄기는
허물을 벗고 녹아내린다
서로 주고받는 진솔한 마중물은
마침내 높고 낮음이 없는 것
나는 너에게 두꺼운 높이가 되고 싶다
이방인
거짓은 참의 이방인이다
입 다문 마음에 찡그린 얼굴
검정색 튤립은 손을 타지 않아
하얀 미사보 둘러쓴 수선화는
이미 잘려나갔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이주한 흰개미는
부산신항터미널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와
검정 개미 알을 품고 있다
숯에서 나온 미세 먼지는
화력발전소 굴뚝 기웃거리다
제어되지 않는 심장 속으로
적도보다 동북쪽이 더 수상하다고
스탠드시술에 뚫린 자주빛깔 물들이며
참숯에 하얀 불꽃이 스며든다
뒤틀어진 법복에 버팀목 덧대고
판결봉 아무리 내려쳐도 천연염색 되지 않아
방향 잃은 젯소 붓질에 구멍이 뚫렸다
맑은 꽃술마저 검은색 품고 있던
백합 모가지를 날려도 핏자국은 흰색이 아니다
거짓인가 참인가
우린 서로에게 이방인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