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흐림이라고 대답하겠다

시인의 말

제1부
봄 13
빈 상자 14
변명 16
보를 내는 사람 18
흰 동백 19
성에를 닦으며 20
체증 22
조용한 시간 24
꽃 26
질문 27
삼각형에 갇혀 울었다 28
대화 30
능소화 32
옥상 34
종이를 태우다 35
환절기 36
바람이 지나간 뒤 38
눈 오시네 39
중국드라마 40

제2부
등을 보다 43
당신의 밑줄 44
직전(直前)의 고양이 46
석천상회 48
한밤중 49
서점 50
방 52
봄날 54
돌이 하는 말 56
떡, 있습니까 57
면접 58
유권자 60
꽃 속에 62
먼 집 64
저녁 65
불통 66
침대 68
노랗게 70
삽목 72
예보 74
그대에게 76

제3부
서시 79
새끼 새의 눈동자는 씻어 말린 서리태 같다 80
우리가 흩어졌을 때 82
나비와 함께 84
보름 1 86
보름 2 88
비 90
깃털 92
그믐 94
기억 96
이유 98
불가사리 100
블라인드 컨 투어 드로잉 101
쓸모 102
사거리식당 104
미니멀리스트 106
수다사 108
백미러에 잡히다 110
안젤라 카페 112
흐림 114
이사 116

해설 일상성의 유비, 그리고 자기대상의 시학 117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플라스틱 같은 감정이 뒤따라왔지만
슬픔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안도했다
사는 일은 중국발 미세먼지 같았다
덧칠해버린 일기장처럼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됐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려서
좁은 길을 만들어냈다
울고 있을 때는
물고기처럼 투명해져서
앞으로 조금 갈 수 있었는데
그것이 내 길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변명」 부분

나는 나에게 최면을 걸어야 한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으면 모두를 속여야 하니까
모두를 속이는 슬픔은 슬픔이 아니니까

-「성에를 닦으며」 부분

쓸쓸함도 간격을 좁힐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붙은 엉덩이가 묵직하다

저녁 무렵
평상 위에 앉은 개가
제 무게로 가만히 어둠을 뭉개고 있다
-「옥상」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