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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9332227
· 쪽수 : 270쪽
· 출판일 : 2019-06-24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아버지의 뒷모습
새벽길
아버지의 뒷모습
버킷리스트와 꿈
그리운 완행열차
바지락칼국수
진달래꽃술
상여놀이
내 탓이오, 내 탓이었다
인터넷 라면
액막이연 날리기
수성당 추억
2. 연꽃처럼
기분 좋은 아침
노란 눈물
똥도 예쁘다
아들아, 할 수 있다
품앗이
유나 아빠야
안아보곡 사랑하멍
큰누이 생일
거리의 판사
연꽃처럼
개와 강아지
3. 지게 철학
단 하루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지게 철학
무언의 대화
창덕궁과 닭 한마리
<베테랑>과 풍경 소리
새로운 생일
인생은 선율 따라
잠자리비행기
까치 이야기
꽃은 멀리 볼수록 아름답다
4. 세 권의 책
군인 아파트에서
죽마지우
세 권의 책
여송연과 <귀거래사>
토끼몰이
진도 가는 길
학도노, 노도학學到老, 老到學
이상동과 실낙원
상처에 뿌린 소금
바다가 육지라면
뉘를 고르다가
5. 개미와 메뚜기
개미와 메뚜기
졸혼을 거부하자
이별여행
돈도 실력
한글날의 단상
염병에 촛불
윤도장과 조문
통일 연습
홋카이도에서
하파 아데이
금강산에 가고 싶다
6. 아름다운 길
선유도
<별들의 전쟁> 촬영지에서
정령치와 만리장성
아름다운 길
세부 유감
동병상련의 나라
사돈과의 여행
사라진 그리스신화
나라 없는 청년들
알람브라 궁전
형제의 나라에서
포르투갈과 임진왜란
《토지》의 흔적을 찾아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초등학생 때 옆집 할머니 부탁으로 주산 과외선생이 되었다. 과외를 하던 때에는 간식으로 고구마나 감주를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진달래꽃 지게미를 간식으로 내오셨다. 설탕에 재어둔 발효된 진홍색 지게미에는 달콤한 술맛이 남아 있었다. 처음 맛본 진달래 지게미의 달콤하고 싸한 술 냄새는 입맛에 맞았다. 내가 가르치던 후배들은 술 냄새가 난다며 먹지를 않았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탓이었을까? 나는 싸한 술 냄새가 스며든 지게미를 수저로 눌러 나온 진달래꽃술을 맛나게 마셨다. 대접에 눌러 짠 진달래 꽃술을 마시고 나니 목소리도 커졌다. 가감산 털고 놓기를 몇 번이나 하고 나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수업하기가 어려워 곱셈과 나눗셈 문제풀이를 시킨 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진달래꽃술" 중에서
주자가례 유교식 장례문화였던 두레와 계, 향약 형태로 이어지던 상여놀이도 사라져 버렸다. 백이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에서 망자의 나이와 신망에 따라 호상도 달라졌다. 볼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음식과 술, 소리꾼의 구성진 사설이 있던 상여놀이는 볼만하였다. 골목 담 벽에서 기댄 아낙들은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였다. 슬퍼하던 동네 사람들은 평생을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서러움이라고도 했다.
빈 상여놀이 때 들었던 소리꾼의 예행연습은 상여 행렬에 서면 더욱 처연했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가까워지는 운구 행렬에 유족들의 애달픈 통곡은 보는 이들까지 슬프게 하였다. 산 사람과 죽은 자의 이별의 순간은 언제나 숙연하다. 소리를 메기던 작은아버지는 빈 상여놀이를 마치신 다음 펑펑 우셨다. 일본 탄광에서 막장 사고로 귀향하여 아버지와 소금을 구워 파신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순사에게 맞아, 죽었다고 거적에 덮인 아버지를 지게로 운반하셨다고 했다. 되살아나신 형님에게 설날마다 음식상을 직접 들고 오셔서 세배를 드리던 모습은 너무 경건하였다. 어느 틈에 아버지 형제 6남매와 작은어머니 한 분, 누님과 형님까지 아홉 분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은 매장되었다. 세 분의 작은아버지 중에서 두 분의 장례까지는 빈 상여놀이가 이어졌다. 소리꾼 셋째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빈 상여놀이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공무원이 되면서 하루 휴가였기에 소리꾼 작은아버지의 장례를 지켜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서울에 사시다 돌아가신 넷째 작은아버지, 둘째 누이와 형님 모두 운구차에 실려 묘지에 안장하던 현장만 지켜보았다.
초로 같은 인생, 일장춘몽처럼 지나버린 어머님의 청춘을 나는 알지 못한다. 덕진구 금상동 회안대군 묘역 앞 요양원이 새롭게 보였다. 옥상에 나온 노인들은 묘지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눈만 뜨면 바라다 보이는 묘지는 모두 가야 할 본향이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는 아직도 꽃상여 타고 선산에 묻히기를 바라시는데…….
- "상여놀이"중에서
보름달이 남산 위로 두둥실 떠오르면 우리 집 마당 달집에 불을 지폈다. 시누대 타들어간 소리는 총 소리 같았다. '후두둑 후두둑, 뚝 탁 뚝 탁, 타다 탕'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불길이 맹렬하게 처마 위로 올라가면 왕대 터지는 폭음이 시작되었다. "팡, 파방, 팡 팡 팡" 잡귀가 도망가기 전, 나부터 혼비백산하여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달과 함께 잡귀와 액을 몰아낸다던 아버지는 마당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준비하셨다. 왕대 몇 개를 사다리꼴로 묶어 세운 다음 대나무 사이에 짚단을 채운다. 시누대와 솔가지를 사다리 주변에 수북이 쌓았다.
기해년 정월 대보름날은 우수였다. 절기 따라 하루 종일 이슬비가 내렸다. 저녁달을 보고서야 보름날임을 알았다. 달집을 태우거나, 쥐불놀이를 본 지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오곡밥을 먹고 더위 팔던 풍습도 사라진 추억이다. 주차를 하고 나오다가 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보름달을 보았다. 액막이연 싸움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 "액막이연 날리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