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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외교정책/외교학
· ISBN : 9791160688481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3-11-30
목차
서 문
범 례
개 요
Ⅰ. 서론
1. 사례연구의 의의
2. 사례연구의 특징과 주요 질문
Ⅱ. 푸에블로호 피납사건의 개요 및 의미
1. 푸에블로호 피납사건 개요
2. 외교사적 시사점
Ⅲ. 한미 협상의 배경과 중요 쟁점
1. 한미 협상의 배경
가. 한반도 안보 상황
나. 남북한 군사력 현황
다. 베트남전과 한국의 파병
라. 미국 내 반전여론
마. 미국의 국방·경제 원조
2. 주요 쟁점에 대한 한국의 입장과 반응
가. 한국 정부의 입장
나. 한국 사회의 반응
3. 주요 쟁점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반응
가. 미국 정부의 입장
나. 미국 정치권과 사회의 반응
Ⅳ. 한미 협상의 전개과정과 협상전략
1. 협상 전개과정
2. 한국의 협상전략
가. 강력한 대북 강경 태도의 파급효과
나. 한국의 당사자 자격 확보를 통한 공세적 대북 외교
다. 베트남 파병과의 연계전략으로 국방력 강화
3. 미국의 협상전략
가. 박정희 대통령 설득하기
나. 한국의 베트남 파병 철회 저지
Ⅴ. 한미 협상의 결과와 평가
1. 협상의 결과
2. 협상의 후속조치
가.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 문제
나. 베트남전 한국의 파병 문제
다. 한국의 국방력 강화
3. 교훈과 시사점
참고문헌
부 록
자료목록 및 해제
[자료 1] “Paper Prepared in the Department of State,” February. 1968
[자료 2] “Notes of the President’s Meeting with Cyrus R. Vance,” February 15, 1968
[자료 3] 「박대통령 각하와 밴스 미대통령특사의 대담요록」, 1968년 2월 12일
[자료 4]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전문」, 1968년 2월 3일
[자료 5] 「주미 한국대사가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 1968년 1월 26일
[자료 6] 「주미 한국대사가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 1968년 3월 2일
[자료 7] 「주미 한국대사가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전문」, 1968년 1월 29일
[자료 8] 「최규하 외무부장관 국회보고 메모」, 1968년 1월 29일·
[자료 9] 「한미간 현안문제에 대한 친서안과 설명안」, 1968년 4월 13일
[자료 10] 「대미교섭 활동 지침」 1968년 3월 23일
[자료 11] “Telegram From the Embassy in Korea to the Department of State,” March 1968
[자료 12] “Telegram From the Embassy in Korea to the Department of State,” January 1968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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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1968년 1월 발발한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은 학문적·외교사적으로 과소평가 되고 외면되었던 대표적인 외교·안보 위기 사례이다. 1960년대 후반은 북한의 호전적 군사 도발 등으로 소위 제2의 한국전쟁 기간이라 불린다. 당시 국제정치 는 베트남전과 미소 간 군비경쟁 등으로 냉전의 최정점에 있었다. 비록 얼마 지 나지 않아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고 베트남전 종식, 미·중 데탕트로 냉전의 해 빙기가 찾아들었지만, 60년대 후반 그 몇 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국제사회는 마치 폭풍의 전야처럼 극도로 불안하고 너무나 차가웠다. 이 시기 에 바로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그리고 미국과 소련이 전쟁이 문지방까지 갔던 심각한 위기가 바로 푸에블로호 피납으로 촉발되었던 것이다.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은 11개월이 지나 해결되었다. 미국과 북한은 29차례의 비공개 협상을 진행했다.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고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를 위해 미국은 북한에게 사과를 했지만 추후 이를 부인하며 체면을 구겼다. 북한은 6. 25전쟁 이후 자신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던 미국 과 정부 대 정부의 관계로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에게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은 외교적 수치였지만 북한에게 이 사건은 대미 항쟁의 표상이 되었다. 북한은 푸 에블로호를 지금도 대동강변에 전시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은 또 다른 숨겨진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한국 정부였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했다. 당시 더 이상의 북한 도발을 용인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 의 분노와 결기는 단호했다. 한국 정부가 동맹국 미국에게 강화된 안보 공약과 군사적 지원을 요구한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하지만 비록 동맹 관계라 하더라도 의지와 요구만으로 미국의 약속과 지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약소 동맹국인 한국은 강대 동맹국 미국의 입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미국과의 다양한 협상을 통해 미국의 경제·군사적 지원을 최대한 확보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베트남 파병 철회를 막기 위해, 한편으로는 한국의 단독 대북 군사 보복을 저지하기 위해 약소 동맹국인 한국에게 적지 않은 지원을 약속해야만 했다.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이 역대 우리 정부의 외교협상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외교협상 사례이자 가장 전략적이었던 동맹 관리 업적으로 평가받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이와 같이 국제정치사에 중요한 안보 위기사이자 우리 외교사에 중요한 협상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푸에블로호 피납 사건에 대한 학문적·정책적 관심은 낮았다. 본 사례를 단순히 미북 간 사건으로 치부하며 수많은 북한의 군사 도발 중 하나로 평가해 왔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비밀문서가 대량 해제되고, 20010년을 전후해 국내 학계에서 다양한 연구 논문 이 발간되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은 중요한 연구 주제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단순히 미북 간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안보, 우리의 외교라는 차원에서 본 사건 을 조망하게 되면서, 그간 우리가 경시했던 우리 정부의 자랑스러운 외교사적 성과와 교훈을 평가하고 성찰하게 된 것은 실로 다행스럽고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럽다.
개인적으로 본 사례는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다. 본 저서를 집필하며 미국 메릴랜드의 국립문서보관소(NARA)와 텍사스 오스틴의 존슨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서 방대한 비밀 해제 문서 뭉치의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과거와의 대화를 나누었던 길고 길었던 2005년 4계절이 그리워졌다. 여전히 천학비재(淺學菲才)인 본인을 학자의 길로 이끌어주셨고 지금도 과분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현인택 교수님(前 통일부장관), 진정한 애국을 위한 참된 연구자의 길을 인도 하고 밝혀주신 김성한 교수님(前 국가안보실장), 이 두 분의 가르침으로 인해 본 연구의 처음과 끝이 모두 가능했음을 고백하고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가치를 발견하고 힘을 실어준 국립외교원 이상숙 박사님, 정종혁 연구원 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2023년
정 성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