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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91160870060
· 쪽수 : 524쪽
· 출판일 : 2017-05-20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5
프롤로그 30
제1장 - 039
제2장 - 059
제3장 - 082
제4장 - 102
제5장 - 122
제6장 - 136
제7장 - 158
제8장 - 172
제9장 - 194
제10장 - 207
제11장 - 221
제12장 - 237
제13장 - 251
제14장 - 267
제15장 - 283
제16장 - 297
제17장 - 312
제18장 - 328
제19장 - 346
제20장 - 360
제21장 - 375
제22장 - 391
제23장 - 408
제24장 - 427
제25장 - 446
제26장 - 469
작품 해설 | 진정한 자유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488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519
책속에서
만약 오늘날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단 한 명의 영적 지도자?인도에서 말하는 ‘구루’ 혹은 아토스 성산(聖山)에서 수도사들이 말하는 ‘거룩한 신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내가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 사람은 조르바일 것이다. 그는 펜대 굴리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소유했다. 가령 저 높은 곳에서 멋지게 자양분을 얻어내는 원초적 시선. 날마다 동틀 때면 새롭게 거듭나는 창조적인 천진난만함. 모든 것을 마치 처음인 양 바라보면서, 바람, 바다, 불, 여자, 땅 등 아주 일상적인 요소들에 처녀성을 부여해 주는 초발심(初發心), 손의 날렵함, 마음의 신선함, 자신의 영혼이 제 그릇보다 더 큰 힘을 품을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영혼에 대하여 농담을 걸 수 있는 용감하고 강건한 사람의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내면 깊은 곳보다 더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야성적이고도 걸걸한 웃음소리 등이 그런 구원의 요소이다. 그 웃음은 노인 조르바의 가슴으로부터 중요한 순간마다 구원을 주려는 듯이 터져 나오는데 인간이 자기 주위에 쳐놓은 차단막, 가령 도덕, 종교, 민족주의 등을 단숨에 폭발시킬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실제로 폭발시켰다). 이에 반하여 불쌍하고 심약한 인간들은 그런 장애물을 주위에 쳐놓으면 그들의 한심한 소인배 생활을 무난히 어기적거리며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와의 작별을 오래 끄는 것은 못할 일이다. 단칼에 떠나보내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풍토인 고독으로 되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과거의 그 비 오는 새벽에 나는 친구로부터 떨어질 수가 없었다(나는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데, 슬프게도 그때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이 항구까지 왔다. 그의 선실에서, 흩어진 여행 가방들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정신은 다른 데 팔려 있었다. 나는 그의 뚜렷한 특징들을 정밀하게 재고 조사하듯이 찬찬히 의도적으로 살펴보았다. 밝은 청록색 눈, 약간 살이 오른 젊은 얼굴, 자부심이 강한 세련된 이목구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가락이 긴 그의 귀족적 두 손을. 어느 한순간, 그는 내 시선이 그의 온몸을 탐욕스럽게 살피며 훑고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서 감정을 감추고 싶을 때면 항상 그러하듯이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다. 작별의 슬픈 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하여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일부러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얼마나 더 오래?”
나는 여행 다닐 때 가지고 다니는, 단테의 『신곡』 문고판을 꺼내들었다. 내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벽에 기대면서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잠시 나는 어느 부분을 선택할까 생각에 잠겼다. 이 불멸의 시편들 중 어느 부분이 좋을까. 지옥의 불타는 타르를 다룬 부분, 연옥의 기분 좋게 서늘한 불꽃, 혹은 인간 희망의 가장 상층부인 천국 부분? 그건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단테 문고판을 손에 들고서 나는 순간적으로 그 자유를 만끽했다. 게다가 이 첫새벽에 내가 고른 시편들이 그날 하루의 운세를 결정할 것이었다. 나는 결정을 내리려고 가장 환상적인 시들의 모음집인 단테 책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함을 느끼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내 뒤통수에 두 개의 눈알이 딱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이중 유리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친구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전광석화처럼 내 마음속을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 기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어떤 나이 든 남자─예순다섯 살가량에 아주 키고 크고 호리호리하며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사내─가 유리문에 딱 달라붙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 고기 파이처럼 납작한 자그만 보따리를 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