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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1151557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21-11-30
책 소개
목차
따뜻한 등 7
솜사탕 20
무서운 밤 28
엄벙통에 빠진 병아리 31
달콤한 꿈 39
누명 46
거짓말 쇼 61
겁쟁이와 순교자 66
말의 씨 72
내 이름은 5분 86
사랑받고 싶은 마음 98
이사 109
초가집의 전쟁 123
이상한 엄마 133
내가 외로울 때 139
별이 되고 싶어 155
요물단지 171
어디로 갈까 185
죽음 앞의 삶 197
달빛 가족 208
작가의 말 215
책속에서
엎드려 눈을 감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생각이 잘 떠올랐다. 글이란 건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즉시 쓰면 안 된다고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마음속에 오래오래 묵혀 육화시키라고 했다. 나는 육화라는 단어가 어린애가 신은 하이힐처럼 느껴졌다. 의미가 그것을 표현하는 소재에 내재해 있는 모양을 육화라고 한다. 메를로 퐁티라는 학자가 말했고 현상학 사전에 풀이하고 있다고 노트에 쓰여 있었는데 설명이 더 어려웠다. 글쓰기에 신경 쓸 점은 그뿐이 아니다. 그승전결의 어디에 어떤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하는지 한참 생각해야 했다.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을, 말하자면 자신의 체험을 강물처럼 유유히 흘려보내면서 오래오래 삭여야 한다. 가슴이 더워지고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더라도 금방 써서는 안 된다. 그럴 때는 슬픔과 분노와 고통만 주절주절 배 앓는 소리로 늘어놓기 쉽다. 그러다 보면 한 쪽 분량을 겨우 쓰고 감정이 고갈된 채 더는 이어 쓸 수 없게 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방에서 불을 내뿜는 가운데 서 있는 소녀이다. 소녀의 가족은 시뻘건 불을 뿜는 십자화라는 단어로 상징된다. 나는 가족에게 도둑 누명을 쓰고 늘 구박받는다. 나는 절규한다. 그 누구도 인간을 무시할 권리가 없으며 편애해서는 안 되며 이유 없는 반항이 없음을 외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을 고발하는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것을 가족들이 읽으면 대번에 우리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가족 간의 필화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줄 짐작하지 못했다.
문예부 선생님은 내 작품을 교우지에 실었다. 내 이야기가 인쇄된 교우지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가 후회하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교우지를 내밀었다.
이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다. 상대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고만 했던 이기심에서 벗어난 유일한 순간이었다. 어린애들에게 사랑을 주려는 마음은 오히려 나를 기쁨으로 넘치게 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외롭지 않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려 했나? 나는 엄마를 사랑해주었나? 어떤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하고 언니를 사랑했나?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