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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91162012048
· 쪽수 : 358쪽
· 출판일 : 2020-01-25
책 소개
목차
金剛經 講解 上
제1 法會가 열린 緣由 [法會因由分]
제2 수보리가 法을 청함 [善現起請分]
제3 大乘의 발현 [大乘正宗分]
제4 머묾 없는 妙行 [妙行無住分]
제5 如來의 참모습을 보다 [如理實見分]
제6 올바른 믿음은 希有하다 [正信希有分]
제7 얻음도 없고, 말함도 없다 [無得無說分]
제8 불법은 空性에서 나오다 [依法出生分]
제9 하나의 相에도 相이 없다 [一相無相分]
제10 淨土를 장엄하다 [莊嚴淨土分]
제11 위함 없는 福은 뛰어나다 [無爲福勝分]
제12 바른 가르침을 존중하다 [尊重正敎分]
제13 法다이 받아 지니다 [如法受持分]
제14 相을 여의고 寂滅에 이르다 [離相寂滅分]
제15 經을 지녀서 읽고 쓰는 공덕 [持經功德分]
제16 전생의 業障을 소멸하다 [能淨業障分]
金剛經 講解 下
제17 마침내 無我에 들다 [究竟無我分]
제18 중생과 부처를 한 몸으로 보다 [一體同觀分]
제19 붓다의 法을 세상에 펴다 [法界通化分]
제20 색신과 32相을 떠나다 [離色離相分]
제21 說한 바 說함이 아니다 [非說所說分]
제22 法을 얻음도 없다 [無法可得分]
제23 깨끗한 마음으로 바르게 수행하다 [淨心行善分]
제24 福德과 智慧는 비교할 수 없다 [福智無比分]
제25 가르쳤으나 가르친 바가 없다 [化無所化分]
제26 法身은 相이 아니다 [法身非相分]
제27 끊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 [無斷無滅分]
제28 받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 [不受不貪分]
제29 法身의 움직임은 고요하다 [威儀寂靜分]
제30 이치와 相이 하나가 되다 [一合理相分]
제31 알음알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知見不生分]
제32 應身은 眞身이 아니다 [應化非眞分]
부록
『금강경』 해제
『金剛般若波羅蜜經纂』
參考文獻
역자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금강경』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석가모니부처와 그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수보리존자須菩提尊者의 문답 내용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붓다와 수보리의 대화’이다. 이 경 앞부분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한 것은 붓다의 입멸 이후, 붓다의 측근 시봉侍奉이었던 아난阿難이 500여 아라한阿羅漢 앞에서 자신이 들은 내용들을 구술口述할 때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유래된 것이다.
이에 따라 팔만대장경의 첫 장 첫 구절은 대개 이와 같이 ‘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여시如是’는 『금강경』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붓다가 생전에 설한 것을 화자話者인 아난존자 개인의 독단이나 편견이 아님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따라서 『금강경』뿐 아니라 경전 대부분의 서두는 모두 ‘여시아문’으로 시작되고 있다. 단 이 경을 한역한 구마라집은 『금강경』을 비롯한 모든 경전에서 ‘여시아문’ 이라고 하였으나, 구마라집보다 약 150년 앞선 강승개康僧鎧는 조위曹魏 가평4년(嘉平, AD.252)에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을 한역하면서 ‘나는 들었다. 이와 같이[我聞如是]’ 라고 하여 ‘아문’과 ‘여시’를 도치倒置하였다.
// < 제1 법회인유분 > 가운데
붓다는 이러한 구류중생九類衆生을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모든 중생을 적적요요寂寂寥寥한 안락세계로 이끌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붓다는 다시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이 많은 중생을 구하려 해도 실제로 멸도를 얻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며 부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붓다는 제2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의 질문을 받고 ‘어떻게 이런 훌륭한 질문을 하였는가![善哉善哉]’ 라고 칭찬하면서 ‘ 선남자선여인이 무상정등각의 마음을 일으켰을 때, 마땅히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다스릴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제3 「대승정종분」에서는 청천벽력같이 냉철한 어조로 돌아서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 그런 다음 ‘왜 그런가?’라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이것을 육조 혜능은 “ 일체의 미혹한 사람이라도 자성을 깨닫게 되면, 부처는 스스로의 상相도 보이지 않고, 스스로의 지혜도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되니, 어찌 중생을 제도했다 하겠는가! 다만 범부가 자기 본심을 보지 못하고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해, 모든 상에 집착하여 무위의 이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아인我人을 없애지 못하므로,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만약 이 병을 여의게 되면 실제로 중생이 멸도를 얻었다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망심이 없는 곳이 바로 보리菩提이고, 생사열반이 본디 평등하여 없는 것인데 어찌 멸도가 있다고 말하는가!”라며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다.
// < 제3 대승정종분 > 가운데
요컨대 붓다의 교설을 이해하려고 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공空과 무無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이해이다. 흔히 공은 비었음을 말하지만, 불가의 본디 뜻은 ‘텅 빈 충만의 세계’로서 진실로 비웠을 때 드러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이다. 이러한 공의 세계는 무無를 품고 유有를 드러내어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를 되풀이하는 무한생명無限生命으로서 무한의식세계無限意識世界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유有와 무無에 대한 이해이다. 즉 ‘있음’은 ‘없음’에 의거하여 나타나고, ‘없음’은 ‘있음’에 의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일 수 없고, 긍정은 긍정을 위한 긍정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아無我와 무심無心이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자아自我는 두고 불필요하게 망상을 부리는 가아假我를 구분하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 < 제5 여리실견분 > 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