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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2208991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18-09-17
책 소개
목차
제 1화
제 2화
제 3화
제 4화
제 5화
제 6화
작가의 말 혹은 사족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모든 사람 너울을 쓴 자들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며(가령 달이나 별을 따거나 꽃을 꺾으려고) 순례하듯 길을 나서는 것은 결국 자기 참모습을 찾아내려는 것 아닐까.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그와 나는 사실은 한 사람인데,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은 허깨비이거나 그림자이고 다른 한쪽은 참모습이 아닐까. 우리 두 사람이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참자아를 찾아내라고 신이 대면하게 해준 것 아닐까.
“제 도씨는 저보다 늘 한참 젊게, 십 년 이십 년은 더 젊게 사는 놈입니더. 철없던 젊은 시절의 저를 극성스럽게 본떠서 행동하지예. 보라색의 굽 높은 중절모를 쓰고, 오래 입어서 소매 끝이 닳은 진한 벽돌색의 양복저고리에 검정 바지를 입고, 부드러운 밤색 구두를 신는 기라예. 살찐 통마늘 같은 코와 쌍꺼풀진 눈매에 눈썹이 넓고, 자잘하고 눌눌한 옥니가 드문드문하고, 반곱슬머리인 도씨의 모습은 제 눈에는 보이지만 저 이외에 어떤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존재입니더. 모습만 투명한 것이 아니고, 목소리도 하얗게 바래고 체취도 없어서 제 아내도 살았을 적에 이놈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어예. 이놈은 길이 잘 든 애완동물처럼 저를 따르는데, 제가 이놈과 말을 주고받으면 아내는 혼자 뭔 말을 그렇게 중얼중얼해쌓느냐고 애교 어린 볼멘소리를 하곤 했지예.”
“꽃길에서는 꽃의 권력을 따라야 한다”는 고재종 시인의 시 한 대목을 떠올리고, 이 여자 앞에서는 이 여자의 권력에 따라주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동시에 암소의 고삐를 잡고 풀을 뜯기는 머리털 허연 노인으로 하여금 위태로운 절벽 가장자리에 피어 있는 꽃을 꺾어다 바치며 「헌화가獻花歌」를 읊게 한 『삼국유사』 속의 귀부인을 생각했다. 가마에 앉아 있는 지체 높은 여인의 자태가 얼마나 고혹적이었으면 노인이 소의 고삐를 놓고 위험을 무릅쓰며 아슬아슬한 절벽에 피어 있는 꽃을 꺾어다 바쳤을까. 귀부인을 가마에 태우고 온 여러 젊은이들은 다 절벽이 위태로워 나서려 하지 않는데 노인이 그리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절벽에 빨간 철쭉꽃들이 난만한 봄에 그 노인은 봄꽃(귀부인)의 고혹적인 권력을 따른 것이고, 그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사랑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