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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0448
· 쪽수 : 608쪽
· 출판일 : 2018-07-17
책 소개
목차
1. 미치지 않고서야
2. 당신의 개가 되고 싶어
3. 목줄은 타이트하게
4. 질투는 나의 힘
5. 끓는점
6. 진실 혹은 대담
외전. 선우와의 첫 플레이
외전. 개인의 취향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디로 갈까요?”
지훈을 힐끔거리며 기사가 막 미터기를 켰다.
“음…….”
어디로 가면 좋을까, 비린 걸 싫어한다는 게 사실인지 몇 번 그 맛을 지워내려는 듯 독한 칵테일을 벌컥벌컥 들이켜다 결국 필름이 끊긴 이수를 내려다 본 지훈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제 집으로 데려가고 싶다. 편안한 침대 위에 이수를 내려놓고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만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아침도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러면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할지도…….
찰나의 고민 끝에 지훈은 결국 이수의 동네를 불렀다. 전에 길을 헤맸던 덕에 지리가 머릿속에 박혔는지, 이번에 빌라까지 찾아가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네비를 보고도 찾지 못하는 기사님에게 이렇게 가면 된다, 저기로 돌면 된다 훈수까지 뒀다. 택시비를 내고 다시 이수를 부축해 빌라 계단을 오르면서도 지훈은 딱히 무겁다는 생각도,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훈의 입에서 저도 모를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그저 감회가 새로웠다.
여기에 이렇게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선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몸이 굳어 오르지 못했던 계단을 힘 있게 밟아 오른 지훈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별것도 아닌데……. 그냥 집에 데려다주고 나오기만 할 건데, 그냥 이 집을 이렇게 당당하게 찾아왔다는 것이 왜 이렇게 뿌듯한지 모르겠다.
“대리님, 집에 다 왔어요.”
“으…….”
“대리니임……. 여기, 번호 키에요.”
도어록 뚜껑을 대신 올린 지훈이 살짝 이수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지훈에게 의지한 채 비틀거리며 걷던 이수가 묵직한 눈꺼풀을 깜박거리며 움직였다. 그리곤 곧장 지훈을 등진 채 천천히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리릭, 잠금이 풀어졌다. 다시 늘어진 이수 대신 지훈의 손이 그 현관문을 바로 열었다.
강 대리님의 집. 박 팀장은 들어가고 나는 들어가지 못했던…….
그 집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냥 문 앞에서 헤어지는 게 깔끔하다는 걸 알면서도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욕심이 지훈의 눈앞을 가렸다. 다시 부축을 해 주는 척 이수의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은 지훈이 슬그머니 현관 안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윽!”
세상이 뒤집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훈의 몸이 뒤로 화려하게 고꾸라졌다. 신발장이나 거실같이 눈앞에 마땅히 보여야 할 풍경 대신 지훈의 눈앞엔 그저 어두컴컴한 민무늬의 천장만이 가득 들어찼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그걸 깨닫기도 전에 지훈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렵하게 덮쳐졌다. 동시에 가뜩이나 놀라 숨을 멈춘 지훈의 목이 꽉 하고 조여 왔다. 냉기어린 손이 제 목줄을 가득 틀어쥐고 있었다.
그 차가운 손이 주는 섬뜩한 감각에 지훈이 뒤늦게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두 팔은 이미 올라탄 사람의 다리 아래에 깔려 저항조차 불가능했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목을 조르는 손엔 더한 힘이 가해졌다.
“끄으…… 흐.”
더 이상의 반항은 의미가 없었다.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피가 쏠린 상태가 되어서야 지훈은 발버둥 치던 몸에서 힘을 풀었다.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이 뚝 떨어지고, 벌어진 입에선 고인 침이 줄줄 흘렀지만 그걸 닦아낼 의지조차 상실한 지 오래였다.
사람의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의 짓이었다. 그 가차없는 손속은 지훈을 곧장 무력하게 만들었다.
시체처럼 몸을 늘어뜨린 지훈은 그대로 순응하듯 저를 올라 탄 상대에게 제 몸을 맡겨 버렸다. 그러자 지훈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몇 초 동안 막혀 있던 기도가 풀리며 산소가 들어오는 순간, 얼굴에 몰려있던 피가 아래로 쑥 내려가는 그 저릿함이 지훈의 전신을 휘몰아쳤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감각이었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물들면서 생각이라는 걸 아예 할 수조차 없어졌다.
목을 졸리는 순간만큼은 곧 죽어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떨렸다면 이제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짜릿함에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단어조차 잊은 채 뱉어지는 거친 숨소리와 심장의 고동소리만이 귓가를 울린다. 그것들이 마치 저를 잡아먹는 것 같았다.
허억, 허억……. 멍하니 숨을 몰아쉬며 지훈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흐릿해진 초점이 서서히 맞춰지면서 드디어 저를 구속하고 있던 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뭐야.”
“대, 리님…….”
“너 뭐하는 새끼냐고.”
언제 취했었냐는 듯 싸늘한 얼굴을 한 이수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