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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4187
· 쪽수 : 656쪽
· 출판일 : 2020-11-16
책 소개
목차
19. 다시, 현재
20. 조력자
21. 끝과 시작
22. 각자의 시간
23. 고백
24. 모든 과거는 엮여 있다
25. 우연은 없기에
26. 사랑이란 이름으로
27. 오래오래 행복하게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런데 어떻게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망가는 방법밖에는…….”
“…….”
“당신과 리리엔 두 사람 모두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엘시아의 표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런 엘시아가 레오디안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또 안쓰러웠다.
홀로 모든 책임을 떠안으려고 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그간 레오디안이 보아온 엘시아는 그러했다.
그럴 필요나 의무가 없는데도, 그녀의 잘못이 아닌데도 엘시아는 언제나 자신을 탓했다.
“……나는 곧 이곳을 나가게 될 겁니다.”
나직이 침음한 레오디안이 어느 때보다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
엘시아는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에 레오디안이 단호한 표정으로 재차 말을 꺼냈다.
“약속하겠습니다.”
레오디안이 손을 뻗으면서 건넨 말에 엘시아가 창가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무사히 돌아갈 겁니다.”
엘시아가 조심스럽게 레오디안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레오디안의 커다란 손에서부터 온기가 전해졌다.
“그러면 그때, 이곳을 떠납시다.”
레오디안의 말에 엘시아는 저도 모르게 레오디안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어 미안합니다.”
엘시아는 레오디안에게 사과를 듣자고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엘시아는 거대한 무력감에 짓눌려서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자 레오디안이 마주 잡은 손에 조금쯤 힘을 주었다. 마치 엘시아를 위로하듯 레오디안은 다감한 눈빛으로 엘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디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엘시아는 차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레오디안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중략)
엘시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레오디안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김없이 단호한 목소리였다. 레오디안은 엘시아에게 이토록 단호한 구석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엘시아가 뜻을 굽히는 일은 없을 듯했다. 레오디안은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처럼 엘시아가 이해되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엘시아가 신황 앞에 나서는 건 실이 되면 실이 됐지, 전혀 득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레오디안은 일단 한 발 물러서서 엘시아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생각에 물었다.
“……어째서 저와 함께 가시려는 겁니까.”
“대공님은 왜 모든 일을 혼자서 책임지려고 하세요?”
레오디안의 물음에 엘시아는 다른 물음으로 대답했다. 뜻밖이면서도 레오디안의 말문을 막기에는 충분한 지적이었다.
레오디안은 재차 놀라 엘시아를 바라보았다. 엘시아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레오디안을 똑똑히 직시하고 있었다.
“저는 대공님의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대공님처럼 저도 리리엔을 지켜 주고 싶어요.”
엘시아는 잠시 레오디안의 반응을 살피면서 말이 없다가, 레오디안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일 대공님과 함께 가게 해 주세요.”
레오디안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레오디안이 대답을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엘시아는 점차 초조해졌다.
레오디안에게는 리리엔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지만, 사실 엘시아가 지키고 싶은 건 리리엔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의 굳은 표정을 한 남자. 이 요령 없고 서투르지만 누구보다도 따스한 마음을 가진 남자를 엘시아는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대공님.”
엘시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레오디안의 커다란 손등 위를 덮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엘시아의 행동에 놀란 레오디안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움찔했다.
이윽고 얼떨떨한 눈으로 시선을 맞춰 온 레오디안을 향해 엘시아가 눈을 휘어 웃어 보였다.
레오디안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주먹을 쥔 레오디안의 손등 위로 뼈가 툭 불거진 채였다.
엘시아는 그런 레오디안의 손등을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쓰다듬다가 이내 두 손으로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러자 레오디안은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그 상태로 그저 엘시아를 홀린 듯 바라보기만 했다.
그를 향해서 엘시아가 밀어를 속살거리기라도 하듯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더 이상 대공님의 뒤에 숨어 있지 않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