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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5719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2-04-12
책 소개
목차
01
02
03
04
05
06
07
08 (1)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랜만입니다, 황후.”
울음소리의 한가운데서 들려온 것은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웃음기 없는 음성은 지독히도 낯설었다. 테네르는 간신히 입을 뻐끔거리며 뒤늦게 아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폐하.”
차가운 시선이 자신과 아이를 훑었다. 테네르는 그 시선을 오래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피가 뚝뚝 흐르는 검 끝이 눈에 들어오자, 아이를 안은 팔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누구의 아입니까.”
“…….”
“누구의 아이입니까, 황후.”
테네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뒤늦게 느껴지는 피비린내에 들이마시는 숨결이 가늘게 떨렸다.
“저는…… 이미 폐해진 몸입니다.”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냐고 물었습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 느껴 본 적 없는 열망이 들어차 있음은 착각인가. 테네르는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꼭 껴안았다. 손 귀한 황실의 아이였다. 아이의 아비가 밝혀지는 순간 분명 빼앗길 테다.
“……제 아이입니다.”
레온하르트는 대답이 없었다. 테네르는 몸을 한껏 옹송그린 채 재차 말했다.
“제가 낳았으니, 제 아입니다.”
“아이의 아비는…….”
“모릅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레온하르트가 짧게 헛웃음 쳤다.
“누군지도 모를 남자의 아이라, 이 말씀입니까?”
“정부를 들여도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물며 저는 이미 폐위된 몸입니다. 그러니…….”
“이젠 부부도 뭣도 아니니, 그대에게 참견하지 말라고요?”
노골적인 말에 테네르는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손길은 여전히 아이만을 다독이고 있었다. 레온하르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머뭇거리던 테네르가 입을 열었다.
“……저를 찾아오신 걸 알면 살바토르 영애가 서운해할 겁니다.”
“그대와 결혼하면서 그녀와는 이미 파혼했습니다.”
“황후의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 두셨습니다.”
테네르가 폐위된 지 벌써 2년이었다. 그 말인즉슨 황후의 자리를 2년이나 비워 두었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태후도 없는 황실에서 황후가 공석이라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대의 말이 맞습니다.”
레온하르트는 선뜻 그녀의 말을 긍정했다.
“황후의 자리가 너무 오래 비었지요.”
나직한 목소리는 테네르가 기억하는 것만큼 다정했다. 그러나 아이를 훑는 눈길은 전에 없이 싸늘했다. 테네르는 낯선 표정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이제 살바토르 영애가 돌아왔으니, 원래대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황후.”
커다란 손이 테네르의 뺨을 감쌌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가 품 안에 있었다. 뜨거운 온기가 닿는 자리에 쿵쿵 맥박이 뛰는 것만 같았다.
“내게 황후는 그대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