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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한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91163165477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4-06-24
책 소개
목차
잘린 머리와 춤을
인면분
삼키는 것
여와의 마을
바늘 비사
모시는 자에게는 마르지 않으리
가마구비
악마와 커피
배고픈 숲속 동물 친구들
이방인
아이스크림의 불문율
아이들은 자란다
버킷리스트
사랑의 선물
천국의 출구
할아버지의 유산
소녀와 사마귀
봉골레
엄마가 될 너에게
모기
마법의 물티슈
기어다니는 솜뭉치
편식의 역사
눈사람이 보고 있다
따라오는 구두
안경과 거미
낙지와 미소
터진 계란 후라이처럼
빛의 뒤에는
내일부터 1일
짙푸른 봄을 마대에 담아
지성의 시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우리 집 근처에 긴 굴다리 하나 있는 거 알지? 평소에는 그리로 잘 다니지 않지만 가끔 지날 때가 있거든. 아주 가끔. 얼마 전에 그 굴다리를 따라서 집에 왔어. 버스 노선이 임시 중단되는 바람에 좀 돌아서 가야 했거든. 저녁때였는데, 아무도 안 다니는 길이잖아. 엄청나게 조용하더라. 조용한 굴다리를 걷고 있으니, 따각따각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서… 어쩐지 집중하게 되더라고. 그 소리에. 그러다 보니 어렴풋이 알겠더라. 그 예쁜 소리가 왜 그렇게 거슬렸는지.
안 맞는 거야. 내 발이 움직이는 거랑 소리가. 한 박자 느리거나, 한 박자 빠르거나. 아주 미세하게 안 맞아. 마치, 내 보폭에 맞춰서 누가 따라오는 것처럼. 한 번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더라.
-「따라오는 구두」 중
그날 밤이었나 아니면 며칠 후였나. 꿈을 꿨어요. 검은 눈의 그것이 내게 머리를 바싹대고 있었어요. 그리고 자기 몸의 살을 뜯어내 계속 내 입속으로 집어넣고 있었죠.
‘어때, 맛있지?’
‘어때, 맛있지?’
‘어때, 맛있지?’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거품의 맛, 피비린내, 한참을 시달리다가 몸서리를 치며 깨어났어요. 얼굴에는 눈물이 번져 지저분하게 번쩍였고―아아, 비늘처럼―깨고 난 후에도 입안의 비릿함이 가시지 않아 몇 번이고 토해야 했죠.
그 이후로 저는 생선회를 도무지 먹을 수 없었어요.
-「터진 계란 후라이처럼」 중
엄마는 마흔이 채 못되어서, 꽤 이른 나이에 죽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치 건전지가 다된 기계처럼 픽- 하고 꺼졌다. 엄마가 죽고 나서는 아빠도 뭔가가 꺼진 것 같았다. 혼이, 정신이, 어쩌면 생명이 꺼져버린 것 같았다. 아빠는 나중에 그 시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런 생각만 가득했었어.”
엄마가 없는 인생은 계획에 없었다는 괴상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괴상하긴 하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 견뎌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멀쩡하게 회사를 나가고, 집에 와선 딸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청소도, 빨래도 빈틈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엔, 꺼져 있었다. 아빠가 다시 살아난 것은 엄마의 노트북에서 하나의 워드 파일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백 페이지에 달하는 쑥 요리 레시피였다. 엄마가 오랫동안 수집해 온 레시피. 아빠는 그것을 사랑의 문서라고 표현했다.
-「짙푸른 봄을 마대에 담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