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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65086589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25-11-30
책 소개
목차
서문
| 1장 | 꺼래이
| 2장 | 적빈
| 3장 | 빈곤
| 4장 | 멀리 간 동무
| 5장 | 나의 어머니
| 6장 | 소독부
| 7장 | 금계납
| 8장 | 일여인
| 9장 | 푸른 하늘
| 10장 | 낙오
저자소개
책속에서
끌려 갔습니다. 순이(順伊)들은 끌려갔습니다. 마치 병든 버러지 떼와도 같이……. 굵은 주먹만큼한 돌맹이를 꼭꼭 짜박은 울퉁불퉁하고도 딱딱한 돌길 위로……. 오랜 감금(監禁)의 생활에 울고 있느라고 세월이 얼마나 갔는지는 몰랐으나 여러 가지를 미루어 생각하건대 아마도 동짓달 그믐께나 되는가 합니다.
고국을 떠날 때는 첫가을이여서 세누겹 저고리에 엷은 속옷을 입고 왔었으므로 아직까지 그때 그 모양대로이니 나날이 깊어가는 시베리아의 냉혹한 바람에 몸뚱아리는 얼어터진지가 오래였습니다.
순이의 늙으신 할아버지, 순이의 어머니, 그리고 순이와 그 외 조선 청년두 사람, 중국 쿨리(勞動者) 한 사람, 도합 여섯 사람이 끌려가는 일행 이었습니다.
'빤즉삿게’를 쓰고 길다란 ‘만도’를 이은 군인 두 사람이 총 끝에다 날카로운 창을 끼어들고 앞뒤로 서서 뚜벅뚜벅 순이들을 몰아갔습니다.
몸뚱아리들은 군데군데 얼어 터져 물이 흐르는데 이따금 뿌리는 눈보라조차 사정없이 휘갈겨 몰려가는 신세를 더욱 애끓게 하였습니다. 칼날같이 산뜻하고 고추같이 매운 묵직한 무게를 가진 바람질이 엷은 옷을 뚫고 마음대로 온몸을 어여내었습니다. 모 - 든 감각을 잃어버린 ‘로보트’같이 어디를 향하여 가는 길인지 죽음의 길인지, 삶의 길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얼어붙은 혼(魂)만이 가물가물 눈을 뜨고 없어지며 자빠지며 총대에 찔려가며 절름절름 걸어갔습니다.
“슈다!” 하면 이편 길로
“뚜다!” 하면 저편 길로 군인의 총 끝을 따라 희미한 삶을 안고 자꾸 걸었습니다.
길가에 오고가는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어린아이는 어머니 팔에 매달리며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순이들은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나도 고국 있을 그 어느 때 순사에게 묶여가는 죄인을 바라보고 무섭고 가엾어서 저렇게 서 있었더니…….’
--- “꺼래이” 중에서
“네까짓 것이야 단 주먹에 박살이 난다. 속히 내놓아라.”
“……”
“이년 못 내놓을까?”
“……”
“이년아, 네 이년아, 이년아, 이년”
“……”
“아, 저년이 귓구멍이 멕혀 빠졌나? 이년아, 글쎄 돈 오십 전만 내란 말이다.”
“……”
“오십 전이 없거든 이십 전만 내놓아.”
“……”
“당장에 뱃대지를 푹 찔러 죽여 버릴 년, 돈 십 전만 내 놓아라 응.”
“……”
“이년이 그래도, 벼락을 맞지 않아서 근질근질하구나, 돈 오 전이라도 내 놓아라.”
“……”
“이런 빌어먹을 년이 단돈 오 전도 안 내놓는다? 헛 이년이야…… 에라 이년……”
후닥딱……하며 마누라의 몸은 뜰 가운데가 큰 대자로 엎드러졌다.
“이년이 돈 오 전도 없다고 사람의 속을 이렇게 썩인단 말이지. 에이 네 이년.”
연달아 박차고 밟고 두들기고 하다가 나중에는 기운이 빠졌는지 방안으로 뛰어들어가다 떨어져 가는 노란 장롱문을 뚝 잡아떼고 그 안에 든 의복을 되는 대로 방안에 펼쳐 놓으며 그중에 한 가지를 골라잡고 밖으로 뛰어나와 아직껏 뜰 가운데에 자빠진 마누라를 보자 손에 쥔 의복으로 두서너 번 갈기고는 그대로 횡 사라져 버렸다.
마누라는 죽은 사람같이 쭉 뻗고 누웠다가 이윽고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도적놈.”
--- “빈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