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5125066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5-04-3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시간 속을 거닐다 · 4
추천의 말 | 에토스적인 설득미학 | 유한근 · 7
Part Ⅰ 내 이럴 줄 알았지
의자·15 | 내가 부르는 시월의 노래·20 | 남편과 술·24
그 나물에 그 밥·30 | 내 이럴 줄 알았지·36 | 모자·41
두 아들 이야기·45 | 터널 속에서·51
Part Ⅱ 세 마리 고양이
6월 어느 날 밤에·59 | 끝자락에 서보니·63 | 모성애·67
생일·71 | 세 마리 고양이 이야기·74
애벌레의 꿈·78 | 장수사진·80
Part Ⅲ 아홉수와 삼재수
배낭을 메고서·87 | 특별한 조기교육·92 | 할머니 치맛바람·96
환선동굴을 다녀와서·104 | 물안개공원·109
손자의 중학교 졸업식·113 | 아홉수와 삼재수·117 | 흰 눈발 타고·121
Part Ⅳ 식혜 한 사발
꽃무늬양산·127 | 핑계·132 | 어깨동무 내 동무·136
식혜 한 사발·143 | 낯선 고향 낯익은 친구·146
농협, 나의 안식처·151 | 연옥 여행을 마치고·159
Part Ⅴ 들국화 그림자
시간을 담은 노트·165 |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었지만·168 | 사진·172
들국화 그림자·176 | 그때 그 순간·180 | 잃어버린 음식·184
문학의 길을 걷다·189 | 북콘서트를 마치고·193 | 시비 제막식·199
Part Ⅴ 칠곡 한티가는길
꿈 이야기·207 | 엄마의 기도·211 | 칠곡 한티가는길·217
레지오장 장례미사·225 | 신심이 불타는 날·228
기적의 성모상·231 | 아들의 효심·235
해설 | 흐르는 시간, 머무는 마음 | 한복용 · 239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 밑으로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해 여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새 학기 첫날, 동생은 어머니가 빳빳하게 다려준 하복을 입고 기차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기차통학을 하는 친구들과 교모를 던지며 여느 때처럼 장난을 치다가, 발을 헛디딘 동생이 기차에서 추락해 하늘나라로 갔다.
그날 저녁, 저녁밥을 다 먹도록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온 식구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이웃 학생이 다급하게 대문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저… 윤식이가 기차에서…” 하면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맨발로 안마당을 뛰어내리면서 “왜! 죽었나?!”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때 우리 어머니가 왜 저러시나 했는데, 어머니의 직감은 무서우리만치 적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충격으로 몸져누워 몇 날 며칠 식음을 거부했다. 움푹 들어간 눈은 살아 있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대로 돌아가실까봐 무서웠고 그대로 박제가 될 듯 순간순간 가슴이 떨렸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남학생들이 하복을 입고 지나가는 것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기차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날마다 통곡했다. 어둡고 괴로운 마음의 터널을 우리 친정 식구들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오로지 어머니께서 성모님을 의지한 채 기도하는 마음으로 버텼기에 가능했지 싶다. 그 덕분에 슬픔의 시간을 무사히 건널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때 내가 어머니를 위로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엄마, 성모님을 생각해보세요. 외아드님을 떠나보내신 십자가의 길, 그 고통에 비하면 우리의 슬픔은 참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 한마디뿐이었다.
― 「엄마의 기도」 부분
눈 주위에 있던 멍이 점점 얼굴 밑으로 내려오면서 색깔이 옅어졌다. 머리 혹도 차차 작아지다가 두 달 이상 걸려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 자기도 넘어져서 이마에 멍든 적이 있다고, 자기는 그 즉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며 내 머리에 난 혹을 걱정했다. 그때서야 나는 엑스레이도 찍지 않았노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미련하다면서 혀를 찼다. 그만하기 다행이지, 내출혈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다시 걱정을 이었다. 그 사람 말대로 머릿속에서 미세한 출혈이라도 일어났으면 지금쯤 나는 병원에 누워 있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찔했다. 내미련한 행동이 부끄러웠다.
건강염려증도 문제이지만 나처럼 너무 무뎌도 문제이다. 매사 조심성 없고 성격이 급한 것도 문제라면 또 문제이다. 몸도 둔하면서 생각이 빠르니 엇박자가 날 수밖에.
내가 여기저기 부딪힐 때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며 혀를 차던 남편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개구쟁이 사내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 성격이 변한 걸 그는 알았을까. 눈을 떼면 두 아들이 일을 터트리니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직장에 다니랴, 아이들 돌보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놓고도 내 시간은 일들로 가득했다. 할 일이 쌓이니 생각이 넘쳐나고 몸 이곳저곳에 알 수 없는 멍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속도 모르고 내게 덤벙댄다며 나무라기만 했다. 일을 줄이라고도 했다. 갑자기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그리웠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부분
아들의 배낭사업이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나, 생각할수록 가슴 한편이 찡해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생존경쟁의 짐을 지고 외롭게 달리는 가장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내가 안쓰럽게 바라볼 때마다 이젠 사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되는지 마음이 쓰인다. 아들은 맘껏 웃으며 살아도 된다고 빙긋 웃어주었다.
지금은 베트남 사업장 관리를 공장장에게 맡기고 아들은 한국 사무실에서 일한다. 나와 가까이 있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나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 바로 옆집에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본다. 출근할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건너와 귀찮게 팔꿈치로 툭툭 친다. 내가 바쁘다고 하면 한번쯤 빼먹어도 되련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아예 움직이지 않을 태세이다. 손바닥이 한번에 맞지 않으면 짝, 하고 기분 좋게 맞을 때까지 ‘다시’를 외친다. 어느 날엔 약속이 있어서 아들보다 먼저 집을 나섰는데 주차장까지 뛰어나와 기어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차에 올랐다. 나는 공연히 투덜대긴 해도 아들이 엄마의 기운을 얻어 하루를 버티려고 그럴 거라 생각해서 얼마라도 해준다.
친구들과 여행 가려고 짐을 챙긴다. 아들이 만든 배낭이다. 가벼운 데다가 멋도 있고 값도 나가 보여서 ‘명품가방’을 멘 기분이다. 하긴 명품 아들이 만들었으니 명품인 게 맞다. 배낭을 아들 머리 쓰다듬듯 손바닥으로 쓰윽 쓰다듬어본다. 그리고 어깨에 멘다. 아들이 살아온 삶의 무게를 그 배낭으로부터 온전히 느낀다. 손가방과는 사뭇 다르다.
마음 같아선 하늘 위에 유유히 떠가는 흰 구름 한 뭉치 담아서 좋은 나의 아들과 어디라도 떠나고 싶다.
― 「배낭을 메고서」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