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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4996064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25-12-16
책 소개
사랑하는 이가 스스로 택한 죽음
그 거대한 심연을 이해하고자 기억의 지층을 파내려가는
한 고고학자의 치열한 기록
고고학자 세라 탈로가 자신의 배우자의 죽음을 통과하며 써내려간 회고록 『어떤 죽음의 방식: 사랑과 상실의 고고학』이 복복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영국 레스터대학교의 역사고고학 교수인 세라 탈로는 평생을 죽음과 매장에 대한 고고학 연구에 헌신해온 학자다. 수천 년 전, 수백 년 전의 묘지와 유적지를 오랜 시간 탐사하며,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 남겨진 자들이 죽은 자와 자신의 관계를 보살피는 방식 등에 관해 수십 편의 논문과 책을 써왔다. 그런 그녀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마주하며 그 진통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온 과정은, 결코 추상화될 수 없는 죽음의 본질을 살갗으로 느껴야 했던, “죽음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탈로의 남편이자 같은 고고학자인 마크 플루체닉은 뇌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진행성 신경질환을 앓아오다가 투병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경험은 탈로를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상실 앞에서, 기억의 지층을 고고학적으로 탐사하듯 이 책에서 탈로는 마크와 함께했던 기억들, 마크가 병으로 쇠약해지며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던 과정, 그의 마지막 선택과 ‘그날’의 황망했던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간다. 그러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고고학 분야에서 논의되는 죽음과 상실에 대한 학문적 이해와 유려하게 연결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선택과 죽음을 다룬 내밀하고도 치열한 기록을 통해, 죽음과 상실, 돌봄, 사랑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며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2023년 영국 왕립 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공공 인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생생하고 감동적인 회고록에서 고고학자 탈로는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신의 슬픔을 다뤄나가며 역사 속의 장례 의식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 그 결과, 슬픔에 대한 일반적인 회고록과는 달리, 신선할 정도로 강인하면서도 여전히 부드러운 정신을 지닌 새로운 방식의 회고록이 탄생했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상실의 잔해 속에서 건져올린
좌절과 연민, 그리고 숨은 사랑의 기억들
2016년 5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탈로는 아이들과 함께 남동생 가족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온다. 오자마자 마크를 찾지만, 불러도 그는 대답이 없다. 마침내 마크의 방에 들어선 탈로는, 그가 침대 위에서 차갑게 죽은 채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와 아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 그가 홀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마크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 거대한 심연에 다가서기 위해, 탈로는 기억이라는 상실의 유적지를 발굴하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복원해간다. 평온하던 그들의 삶은 마크에게 갑작스러운 신경질환이 닥치면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병이 진행될수록 마크는 특유의 학자다운 명석함도, 유머감각도, 자신감도, 취미도, 활기도 잃어간다. 마침내 스스로 걸을 수도, 용변을 볼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탈로는 최선을 다해 마크를 돌보지만, 그가 거동할 수 없게 되면서 생계와 육아, 고강도의 간병까지 홀로 떠맡으며 점점 더 탈진 상태가 된다.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지쳐 불쑥불쑥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몰래 흐느껴 울기도 한다. 이처럼 탈로는 마크에 대한 헌신과 연민, 따뜻한 마음뿐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솟아올라오는 나약함, 뾰족함, 못나고 어두운 마음까지 이 회고록에서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그것은 인생의 늪에 빠진 마크의 좌절과 고통뿐만이 아닌, 자신의 바닥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햇살 환하고 따뜻했던 5월 아침, 노란 깃털이불이 덮인 침대에서 그 모든 일이 끝나고 수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사랑이, 우리 삶의 쓰레기 틈새를 뚫고 솟아오르는 버섯처럼 다시 나타났다. _344쪽
운명이 내준 과제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내던 날들. 그것은 그만큼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무수한 상처를 주는 나날이기도 했지만, 그 밑에는 또한 언제나 사랑이 깔려 있었음을 탈로는 발견한다. 무뚝뚝한 마크는 젊은 시절 수줍게 건넨 첫 고백 이후 사랑한다는 말을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못하던 남자였으나, 일상 곳곳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마크가 혼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택한 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탈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음을 그녀는 안다. 마크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죽음 역시, 그만의 숨은 사랑의 방식이었음을 깨닫는다.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죽어가는,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마크의 고통과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로 탈로를 이끈다. 무엇이 좋은 죽음이고 존엄한 죽음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나날을 좀더 편하게 해줄 방법은 무엇인가.
마크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그의 죽음’은 그저 외면하고 피해야 할 무엇일 뿐, 진지한 대화의 화두가 되지 못했다고 탈로는 말한다. 그녀는 차라리 “마지막에 우리가 서로에게 더 솔직했더라면”, 그가 원하는 죽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마크는 홀로 죽음을 선택했고, 비밀리에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했다. 탈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지 않았다. 탈로가 마크의 계획을 알고서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현행법상 그녀는 남편의 자살을 방조하거나 돕거나 부추겼다는 이유로 기소될 위험에 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는 기습적으로 죽어야 했다. 탈로는 자신이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마크가 “혼자 죽어야만 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외로웠을 그 순간”에 그의 곁에 있어줄 수 없었다는 것.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
그가 죽을 때 내가 그의 곁에 앉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의식으로부터, 고통으로부터, 삶으로부터 툭 떨어질 때 내가 그의 손을 잡고 있었더라면. _331쪽
현대의 법률과 의료 체계의 모순을 지적하며, 탈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존엄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안락사와 조력사망은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이다. 디그니타스가 운영하는 스위스의 안락사클리닉 같은 기관이 있으나, 확실한 ‘말기’ 진단을 받아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마크의 병세는 회복의 가망이 보이지 않았고, 하루하루 나빠지며 고통받았지만, 병의 원인이 불분명했던 탓에 그는 공식적인 말기 진단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조력사망은 마크의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결국 택한 죽음의 방식을 탈로는 가슴 깊이 존중하고, 애틋하게 곱씹는다.
죽음은 삶의 필수적인 과정이며, 자신의 죽음, 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인생의 과제이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결국 삶을 더욱 사랑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한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상실의 과정을 정면으로 통과하며 죽음의 방식을 성찰하는 이 책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이의 곁을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
1 병든 사람을 위한 연고
2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다른 여러 방법
3 너무 많이 사랑한 고고학자들
4 상실의 고고학
5 다시 메우기
6 중기 구석기의 연민
7 주차장의 성 리처드
8 철기시대의 문제적 물건
9 테르미누스 안테 퀨
10 사천 살의 사지마비 환자
11 현장 학교
12 블루 피그
13 아마도 한 명, 하지만 확실히는 모름
14 양립할 수 없는 믿음들
15 펠로 데 세
16 카파코차
17 땅의 인류학
18 사별의 슬픔과 헤드헌터의 격분
19 무덤 Bj581
20 틀니의 역사
21 두번째 유해
22 수렵채집인
감사의 말
책속에서
그래서, 마크는 내게 문자를 보내고 라디오를 끈 다음, 아마도 물과 함께 펜토바르비탈을 삼켰을 것이다. 그 약은 효과가 빠르다. 그는 몇 분 안에 잠들었을 것이고, 아마 한 시간 안에 사망했을 것이다.
마크는 나를 생각했을까? 외롭고 버려진 기분을 느꼈을까? 나를, 자기 어머니를, 누구라도 그 어둠이 스며드는 동안 그의 손을 잡아줄 사람을 외쳐 불렀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견딜 수 없지만,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도 없다.
"마크?"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척 고요했다. 갑자기 뱃속의 모든 장기가 30센티미터쯤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멀미가 날 것 같고 속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도 느낌이 왔지만, 확신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이 우리의 세상이 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이라고, 이것이 내 옛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걷는 걸음이라고.
"이 남자분이 남편이신 마크 플루체닉이라는 걸 확인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아주 잘 아는 몸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알던 생기 넘치던 때의 마크와는 너무도 달라진 몸이었다. 이건 마크가 아니야. 진짜 마크는 아니야. 그냥 일종의 갑옷 같은 거야. 병이 진행될수록 온전했을 때 마크를 이루던 층들이 차례로 벗겨져나갔다. 먼저 페인트와 광택제의 층이 떨어지고 이어 날카롭던 가장자리가 마모되면서, 그는 더 흐릿한 사람이 되어갔다. 기쁨과 유머가 점점 닳아 사라졌고, 사려 깊은 지성은 명백한 사실들의 덩어리 같은 것으로 쪼그라들었다. 다음으로는 신체의 활력이, 자신감 넘치던 체력이 빠져나갔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건 모든 게 다 벗겨지고 남은 이 고갱이뿐이었다. 똑 부러지던 자기확신조차 없어져버린 마크. 그저 고통, 그리고 사랑과 용기. 그리고 지금은, 그조차도 없다. 그냥 기억들뿐. 이야기들뿐. 이야기와 연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