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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인문학 일반
· ISBN : 9791166292262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03-31
책 소개
목차
Ⅰ. 裡里의 탄생과 발전
1. 왜 이리인가?
2. 이리와 익산의 범위
3. 그동안의 이리 연구
Ⅱ. 타자(他者)의 시선으로 본 이리
1. 조선 이주 안내서 편찬 붐
1) 『이리안내(裡里案內)』의 편찬 배경과 목적 2) 관찬 지방지와 회고록
2. 이리 바깥에서 본 이리
1) 전라북도 관련 도서 2) 지도와 사진엽서에 보이는 근대 이리의 표상
3. 이리 일본인 이민자 사회의 시기 구분
1) 일본인 이민의 진입과 도시 형성 2) 유지 정치와 사회상
3) 제3기, 이민사회의 균열과 침체
Ⅲ. 제1기, 일본인 이민의 진입과 도시 형성(1904-1914)
1. 호남선 개통과 중심 이동
1) 이리 의병의 저항 양상 2) 호남선 개통과 수리조합
3) 지역유지와 학교조합
2. 주요 기관과 이리의 문화
1) 이리의 언론과 출판문화 2) 인명록으로 살펴본 지배층
3. 위성타운과 인물
1) 오산, 대장촌, 황등, 함열 2) 일본인 유지와 사업
Ⅳ. 제2기, 유지(有志) 정치와 사회상(1915-1927)
1. 이리지역의 유지 네트워크
1) 조합 전성시대 2) 이민자 사회의 유망사업군
3) 부동산업과 대금업자의 시대
2. 이리의 약진과 농장주
1) 이리농림학교의 설립과 차별 2) 지역 유지들의 기차역 독점
Ⅴ. 제3기, 균열과 침체(1928-1945)
1. 이민사회의 균열과 공황 진입
1) 인구 증가와 이리읍으로 성장 2) 상수도 문제와 학교 유치 실패
3) 이민 1세대의 몰락과 친일파
2. 이리 이민사회의 침체
1) 오하시농장 사태와 이리지역 경제 상황 2) 계(契)와 무진회사
3) 국민총동원령과 패전
Ⅵ. 타자의 시선이 담지 못한 이리
1. 일본인 저작이 담지 못한 사항
1) 쌀 생산 기지화를 위한 만경강 개발 2) 만경강 호안공사
3) 이리지역의 노동자들
2. 세심한 인용이 필요한 일본인 자료
1) 철도 부설과 수리조합 2) 학교 설립과 기업형 농장
3. 개방성과 포용성, 저항과 창의성
Ⅶ. 교육도시 이리의 까마귀떼
1. 근대 교육기관의 설립
2. 이리농림학교, 이리공업학교
3. 대학도시, 이리
4. 남성(南星)학교의 설립
5.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 그리고 야학
Ⅷ. 문학작품 속에 표현된 현대 이리
1. 한국 소설의 주요 공간, 기차역
1) 신흥 식민도시의 전형, 이리 2) 채만식의 소설에 나타난 이리
3) 박범신의 소설 속 이리 4) 김남중의 소설, 기찻길 옆 동네
5) ‘소라단’과 ‘이리역’의 상호역동적 장소성
6) 궐기와 동원의 시대, 이리역 광장 7) 폭발사고의 전말
8) 영화 〈이리〉
2. 이리 사람들의 기억과 장소성
1) 신광교회와 종탑 2) 문학작품 속 상처와 광기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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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Ⅰ. 이리의 탄생과 발전] 오늘의 익산시는 전통적 농촌 공간에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이리(裡里)’라는 신흥도시가 결합된 도농복합도시이다.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은 주민들의 선택으로 도농통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복합도시를 탄생시켰다. 이로써 호남의 3대 도시라는 위상을 오래도록 유지해 왔지만 ‘익산 백제’의 전통 공간과 ‘근대 이리’라는 통합의 문제는 도시와 농촌의 화학적 결합 등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이리라는 신흥도시가 탄생할 때부터 전통과 근대, 해양 과 농경문화의 마찰 접점에 자리한 입지적 문제점에다 거대농장과 수리조합으로 대표되는 식민지 경영과 척식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개발에 대한 갈등으로 나타나는 소작쟁의 등은 일본으로부터 조선인의 자주성을 찾으려 는 저항의 과정이기에 그 ‘거침’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사카와 군산을 잇는 제국주의 식민지 교통 라인 속에서 내륙 농촌 배후도시로 탄생한, 정거장을 중심으로 한 이리라는 공간은 과거의 촌락 입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도시였다.
[Ⅱ. 타자의 시선으로 본 이리] 이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위에서 살펴본 이리에서 발행된 두 권의 『이리안내(裡里案內)』와 『익산군사정(益山郡事情)』 그리고 회고록 『駐鮮三十六ヶ年』이다. 그러나 위 저작물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리 관외에서 발간한 책들을 함께 분석하여 교차 검증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도시 형성의 이면을 살펴보기 위해 당대 발간한 신문 검색의 방법 속 ‘이리’라는 키워드를 넣고 참고자료로 살피는데 1920년도 이전 기사는 《대한매일신보》와 《군산일보》를 살펴보고 1920년도에서 1940년도의 기사는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하되 《경성일보》도 참조하고 1940년대 이후는 《매일신보》 등의 신문 기사를 참조하였다. 이 밖에도 「관보」, 공문서의 경우 국가기록원에서 소장 중인 행정구역 관련 자료, 통계자료, 조사보고 자료, 회의록 등을 참고하였다.
[Ⅲ. 제1기, 일본인 이민의 진입과 도시 형성(1904-1914)] 도시의 공간 구조적 측면에서는, 전통도시 전주에서 양반 세력과의 갈등 혹은 군산처럼 해안의 매립 등 돈이 많이 드는 지형변화를 통해 시가지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는 처음부터 친일파들의 역세권 개발전략에 맞춤형 도시개발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일본인 이민 1세대들은 전주나 군산항을 연결하는 정거장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축을 기준으로 은행과 경찰서 등 행정 공간을 장착하고 남북축을 기준으로 하는 상업공간의 가로로 구성된 도시계획 체계를 갖추어 갔다. 1908년 이리에 진출한 일본인 오기 오네츠케(扇米助) 등이 청원을 주도하여 익산군청과 우편소가 익산군 금마에서 이리로 이전한다. 1911년 철도공사가 시작되면서 익산헌병분대와 익산변전소도 옮겨왔다. 이리 우편소는 훗날 조치원과 함께 조선의 2대 우편소로 불릴 만큼 번성했다. 전 통 공간 금마는 쇠락하고 신이리는 도시의 꼴을 조금씩 갖춰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