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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김선태 (지은이)
고요아침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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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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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7242235
· 쪽수 : 140쪽
· 출판일 : 2024-11-30

목차

시인의 말 05

제1부 지울 수 없는 서사

선택 13
선태 14
차중이 아재 16
홍식이 아재 18
49세 19
똥장군 20
점순이 누님 21
강남골 댁 22
석수쟁이 23
목깽이 24
젖가슴에 대한 통과의례 26
스웨터와 모자 27
코피쟁이 28
단감나무의 마음 30
찍히다 32
선달네 까끔 34
트럭 바큇자국 35
월치재 대학 36
물방내 39

제2부 집과 사람


집과 사람 43
소 눈 둠벙 44
지붕 46
질구루마 47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48
물고기 비 50
보리 밥티 52
탐진만 바닷가 53
어린 가수 54
배호·3 56
자화상 57
달방 58
강변 살다 59
아카시, 아가씨 60
폐촌 61

제3부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저 불빛 65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66
곰소 68
벗집 70
맹골 곽도 72
천지간의 둥근 울음 73
유달산 76
목포에 살다 78
아리랑 고개 80
오거리 식당 81
정병조 82
동거차도 83
조도댁 85
구족 마을에서 87

제4부 남도밥상


남도 밥상 91
푸조나무 어르신 92
덕자 병어 93
서대 94
독옷 95
낚시꾼 시인 96
잘피숲 98
무지갯등 99
음악쌀 100
묵은지論 102
세월도 녹이 슨다 103
돈데보이·2024 104
바로 이게 시 107
오동도 동백꽃 108
골초 110
금연記 112
평상 114
늙어가면서 115

해설_ 수긍과 긍정의 아름다운 서사/이지엽 116

저자소개

김선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간이역』, 『작은 엽서』, 『동백숲에 길을 묻다』, 『살구꽃이 돌아왔다』, 『그늘의 깊이』, 『햇살 택배』, 『한 사람이 다녀갔다』, 『짧다』,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등과 평론집 『풍경과 성찰의 언어』, 『진정성의 시학』, 『남도 시문학의 어제와 오늘』, 『시 읽기의 매혹』. 연구서 『목포시문학사와 전남시단사』, 『김현구 시 연구』, 『광주·전남현대시문학 지도』(공저). 기행 산문집 『강진문화기행』, 『남도문학기행』(공저) 등이 있다. 제5회 애지문학상, 제55회 전라남도문화상, 제9회 시작문학상, 제4회 송수권시문학상, 제20회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목포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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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선태

같은 마을에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살았다. 같은 나이에다 동성동본에 항렬도 같았다. 생김새와 성격만 다를 뿐이었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의식하며 살았다. 딱히 싫어하거나 미워할 이유도 없는데, 내가 그를 부를 때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싫었다. 그렇게 은근한 거리에서 늘 서먹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 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곤혹스러운 건 출석을 부를 때였다. 동시에 두 명의 선태가 대답했다.

결국 선생님은 궁여지책을 내놓았는데, 내가 큰 선태 그가 작은 선태였다. 그땐 내가 좀 더 키가 컸던 모양이다.

멀리 떨어진 산기슭에 살았던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했다. 그런데 세월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간 어느 날이던가.

일찍부터 가출하여 세상을 떠돌던 그가 불행히도 불혹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때 나는 왠지 슬픔보다 미안함 같은 것이 밀물져왔다. 살아생전 그를 멀리했던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지금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가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걸 보면, 우리가 서로의 아바타였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이름으로 살았지만 일찍 유명을 달리한 그를 위해, 내가 그 몫까지 살아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마음을 다잡곤 한다.


소 눈 둠벙

들판 한가운데 크고 동그란 둠벙이 하나 있었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물이 그득해서
농사짓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수원이었지
들짐승들도 이곳에서 목을 축였지
어느 날 논일을 하던 소가 그만 풍덩 빠져버렸어
주인이 쉬는 사이 물을 마시다 그만 미끄러진 거지
기어 나오려고 사력을 다해 허우적댔으나
경사가 가팔라 깊은 둠벙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지
뒤늦게야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죽은 소를 건져 올려
둠벙 가에서 해체하여 집집마다 고기를 나누었지
덕분에 다들 귀한 소고기를 맛볼 수 있어 좋았지만
일만 하다 죽어 육 보시까지 한 소를 불쌍히 여겼지
그런데 그 뒤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밤마다 둠벙에서 움머 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그 소리가 하도 슬퍼서 다들 잠을 이룰 수 없었어
둠벙 가에서 고사를 지낸 후에야 겨우 그쳤지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 둠벙의 이름을
빠져 죽은 소의 눈망울을 닮았다 하여
소 눈 둠벙이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들판 한가운데서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며
눈물 글썽이고 있다지 아마.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흑산, 하면 마음부터 미리 캄캄해지고 입안 가득 비린내가 풍기지만

막상 당도하여 상라봉 열두 구비 넘어 서쪽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은 자진 유배를 떠나온 양 고조곤히 서럽더라. 꼬막 껍데기마냥 엎어진 어촌마을들 보면 아름다워 절로 눈물 나더라.

그런데, 이 꾀죄죄한 마을들이 기어이 내 발길을 막걸리 몇 순배로 가로막는 이유는 비록 지금은 한자어에 자리를 내주었으되 주민들 입가에 구수하게 살아 있는 토박이 이름들 때문.

마리는 ‘모듸미’, 비리는 ‘전듸미’, 곤촌은 ‘곤듸’, 심리는 ‘지푸미’

가파른 한다령 너머 동쪽으로 꺾어 들면 소사리는 ‘잔모래미’, 천촌은 ‘여티미’, 청촌은 ‘청재미’

또 남쪽 옴팍한 바닷가엔 정약전이 유배의 시름을 풀었던 사리는 ‘모래미’

‘―미’란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움푹 파고들어 후미진 곳. 이 토박이 마을 이름들의 곤곤한 내력을 하나씩 되짚노라면 세월아 네월아 어쩔 수 없이 또 하룻밤을 묵고야 마느니.

아, 아름다운 것들은 죄다 멀리 있구나
들킬세라 꼭꼭 숨어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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