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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7526137
· 쪽수 : 367쪽
· 출판일 : 2025-06-05
책 소개
목차
축하의 글1
축하의 글2
서문
1 부 가족의 울타리
1 나의 부모님
2 나의 탄생 이야기
3 내 인생의 첫 기억
4 큰댁의 귀염둥이
5 오빠들의 장난감
6 어린 시절 간식
7 정월 대보름의 기억
8 속눈썹이 긴 아기
9 큰 애기가 작은 애기를 업고
10 육성회비
11 밥하고 새끼 꼬고
12 첫 생리 사건
13 여고시절
2 부 세상에 나가다
1 후회와 가출 그리고 서울 상경
2 가족 편지
3 인생의 길목에서
4 회사 이직
5 여자의 의리
6 28세에 여행사 대표가 되다.
7 변화의 물결
8 내 삶의 당근이 되어준 분들
9 단식기도와 친정집
3 부 결혼
1 인연과 결혼
2 직지사와 꿈 이야기
3 태몽과 임신
4 야속한 남편
5 엄마가 되다
6 기도의 응답
7 공밥 먹으니, 좋으냐?
8 애비 따라 가래이
9 태백산 천제단
10 어린 딸의 기도
11 시어머니와의 약속
12 천안에서의 삶
13 ‘한 오백년’ 노랫소리
14 사찰과 인연(7일간의 사찰 순례)
15 국선도
16 지리산 고운동
17 부부의 날을 맞이하며
4 부 지금 여기
1 천안시노인복지관과 인연
2 신기한 8체질
3 다섯 동서의 첫 나들이
4 뇌종양 앓던 그녀
5 숲 해설가
6 마지막 여행 준비
7 국선도와 불교가 화합한 날
8 봉서산
9 아름다운 인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5년 전, 젊은 날의 가슴 저린 사연들과 기도하며 써 내려간 일기들을 마주하며 글을 써 보기로 결심했다. 묵혀 두었던 감정이 솟구쳐올라 울음을 삼키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면에 깊이 새겨졌던 마음의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며 가슴에 멍울이 맺혔다가 풀리기도 했다. 글을 쓰는 과정은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내 말투가 부드럽고 상냥해졌으며, 맑아졌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오랫동안 쌓인 것들을 해우소에서 퍼내고 깨끗이 비워낸 듯한 기분이다.
생신을 치르고 짐을 싸느라 분주한 나를 따라다니시며 아버지는 “나 미워하지 마라.”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나는 “제가 아버지를 왜 미워하겠어요. 다만 엄마에게 잘못하시는 게 안타까워서 잔소리를 하는 거죠.”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엄마한테 물어봐라. 내가 엄마 입에 혀처럼 말을 잘 듣고, 잘해 줬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니 이제 아무 여한도 없다. 그러니 너는 엄마한테 잘해라.”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었는데 난 흘려듣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손이라도 잡아드려야 했는데, 무지한 나는 가장 소중한 말을, 가장 소중한 순간을 그렇게 놓쳐버렸다. 한 달 후인 음력 10월 3일, 아버지는 빈집, 개 사육장 앞에 쓰러져 홀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김천시장에 가 계셨고, 아무도 임종을 같이하지 못한 채 외로운 길을 떠나셨다.
초가을 무렵부터 소매긴 하얀 춘추복을 입었다. 두 벌을 가지고 3년 동안 입어서 낡고 퇴색되었지만, 솜털처럼 가볍고 멋이 있어 나는 열심히 다려 입고 다녔다. 학교 가는 길엔 가냘픈 코스모스가 우리를 기다리듯 긴 목을 뽑아 들고 하늘거렸다. 고3 때엔 ‘이제 코스모스가 지고 씨앗이 무르익으면 나의 정든 학교를 떠나 세상에 나가겠지, 이 교복을 벗으면 세상에 나가겠구나.’라고 아쉬워하며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코스모스야 그대로 피어 있어 다오. 바람에 힘겨워 가냘프게 허우적거리는 네 모습이 마치 나의 마음과 어쩌면 그렇게 닳았니. 험악하고 시끄러운 세상에 나가면 백합 같은 내 마음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쁜 물이 들겠지.’
나는 학교를 떠나기 싫었다. 교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교문 옆 한일동산이 보였다. 사계절을 다르게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으면 어느새 황홀감에 빠지곤 했다. 가을이 되어 갈참나무의 옷이 고와질수록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다. 곱던 동산의 옷이 가랑잎 되어 힘없이 나뒹굴 때면 쓸쓸해졌다. 본교의 마지막 단풍 계절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