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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7910257
· 쪽수 : 196쪽
· 출판일 : 2021-10-2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작가의 말]
[해설] 펜데믹 속 증상과 치유 모색하기_ 전기철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갸릉갸릉 우는 어떤 작고 가냘픈 생명체에 대한 보속의 기회다.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되지도 않고, 아주 소멸해버리지도 않을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오늘의 시체놀이를 끝으로 나는 내 인생을 한번 살아 보리라 마음먹는다. 방바닥과 하나가 된 내 몸을 큰 대자로 쭉 펴본다. 시간이 멈춘 사각형의 관 속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편안한 시체가 된 몸이 퍽 안락하다. 죽은 듯 자고 일어나, 나는 시체가 아닌 내 생을 그려보리라. 쓰다 만 자기소개서의 커서가 붉은 눈으로 깜빡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다.
대학 졸업 기념으로 떠났던 나의 첫 해외여행은 발리였다. 비현실적으로 푸르른 바다와 색색의 산호는 마치 투명한 유리로 만든 거대한 성처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점점 내려가다가 어느 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형광색을 띤 약지 손톱만 한 물고기들은 무리를 지어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의 꽃이라고 불리는 산호초와 아름다운 물고기 무리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렇게 유유히 흘렀다. 이보다 더 평화롭고 안온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무리에서 길을 잃은 물고기 한 마리가 빙글빙글 한자리에서 돌았다. 보기엔 그저 맑고 투명한 유리와도 같았던 그 세계가 날카로운 파편을 여실히 드러냈다. 살아가는 세상에선 쉬이 발견하기 힘들었던 푸른색의 우아한 산호초, 그리고 그 풍경에 속아 증발해버린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졌다.
누군가 사랑의 정의를 다시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를 위해 뭐든지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을 때 사랑을 하세요. 그의 무신경을, 무기력함을, 짜증을, 고통을, 비난을 받아줄 수 있는 성인군자라면 언제든 사랑을 시작하세요. 어쩌면 나는 그를 위해 내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달팽이는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