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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8551817
· 쪽수 : 216쪽
· 출판일 : 2023-11-14
목차
작가의 말 5
제1장. 미운 오리 새끼
연어 닮은 여인 10
생명 15
봄 19
미운 오리 새끼 22
삶과 죽음 27
아픈 손가락 32
개명 37
폐교 41
아름다운 봄 46
의자 51
이방인 55
1400년 전 역사 속으로 60
제2장. 인륜지대사
사진 70
아버지, 우리 아버지 74
나는 속물이야 79
미스 월드 스마트폰 83
인륜지대사 88
길 92
아! 어머니 97
사라진 참나무밭 102
짝사랑 105
부소산성에서 백제 정신을 찾다 110
회상 116
제3장. 행복지수
내 사랑 스마트폰 122
지구별이 보내는 SOS 126
미운 정 131
행복지수 137
어느 오후 141
새 옷 입은 둥지 144
아련한 추억 속으로 149
신토불이 153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157
밥주걱 161
세상은 넓고도 좁다 165
제4장. 미 동부, 캐나다 여행기
새로운 세상을 향해 170
중국을 경유하다 173
머나먼 토론토 & 시내 풍경 175
나이아가라 폭포 180
뉴욕으로 넘어오다 184
문화적 차이 188
최첨단 도시 맨해튼, 사흘 체험기 191
자유의 여신상을 향하여 196
신사의 도시, 워싱턴 DC 202
세계의 심장부, 백악관에 가다 206
방대한 인공공원, 센트럴파크 209
록펠러 센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212
맨해튼의 야경 212
여행 후기 215
저자소개
책속에서
연어 닮은 여인
시내에 가는 길, 큰 도로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향순이를 보았다. 잠시 기다리다가 합류했다. 마침 같은 방향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중에,
“많이 바쁘지? 건물까지 장만하고 대단해.”
라고 말했더니,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이 정도도 못살면 어떻게 해~”
약간 톤을 높여 조금 행복에 겨운 듯 답하며 향순이는 활짝 웃는다.
그녀는 시내에서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함께라고는 하지만 남편은 또 다른 일을 별여 놓아 혼자서 식당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고 있다. 일에 시달려서인지 화장기 없는 깡마른 얼굴엔 주름이 많아 자신의 나이보다 조금 더 들어 보였다. 새삼 옛날이 떠오른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인 그녀와 나는 동향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읍에서 조금 떨어진 면 소재지가 그녀와 내가 유년을 공유했던 어릴 적 공간이다. 150여 호나 되는 시골치곤 꽤 큰 동네였다. 우리 집과 그녀의 집은 동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었다. 거리상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작은어머니 댁이 그녀 집 근처라서 또래 사촌하고 놀다가 자연스레 같이 어울리곤 하였다.
당시 어린 나는 그녀의 불행을 알아채지 못했다. 토담 한쪽이 길 쪽으로 허물어져 내린 오두막에서 할머니와 위의 언니랑 세 식구가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만 얼핏 했을 뿐. 가끔 집에서 부모님이 그 집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주워들었지만 어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뿐이었고, 성인이 되어서야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외할머니와 당시 청소년인 외삼촌 두 명이 사는 오두막에 언니랑 얹혀살고 있었고, 그런 친정에 그의 어머니는 어린 자매를 버리듯이 내맡긴 채 객지로 떠도는 밤의 여자였던 것이다.
해마다 춘궁기만 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한 그녀의 할머니는 당시 풍족했던 우리 집에 와서 울며 하소연하였다. 안방 아랫목에 나란히 앉아 나지막이 얘기하시는 부모님 목소리와는 달리, 윗목에 앉아 울음 섞인 큰 목소리로 침을 튀며 이야기하시는 괄괄한 성격의 그 할머니가 무서워서 나는 다른 방으로 피한 채 두 귀만 쫑긋 세웠다. 당시 그 할머니의 행동이 너무나 당당해서 부모님이 큰 잘못을 한 줄 알고 잔뜩 겁을 먹은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자매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사촌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서울로 돈벌이를 떠났다고 했다. 그 후 그들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녀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아마도 40여 년의 세월은 족히 흘렀으리라. 상처와 서러움으로 뒤 범벅일 기억 속 어린 시절임에도 수 없는 세월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다시 연어처럼 찾아든 걸 보면 조금이나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았던 걸까.
내 나이 50을 갓 넘겼을 무렵, 그녀를 다시 만난 건 동네 신경외과였다. 허리가 아파 치료차 외과에 갔다가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2인실 방으로 들어갔다. 맞은편 침대에 누워있는 선이 또렷한 그녀를 보자 옛날의 향순이가 떠오른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분명 그녀일 거라 확신하였다. 궁금증 발동으로 참을 수 없던 나는, “내가 실수하는 건지 모르지만 혹시 예전에 ○○에서 살지 않았느냐”고 운을 뗐다. 맞는다고 했다. 내친김에 다시 물었다. “이름이 향순이 아니냐”고, 역시 맞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랐다. 그녀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니…. 길눈 어두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에 큰 특징이 없으면 안면을 튼 정도의 사람조차 긴가민가 헷갈려 실수 연발인데. 더구나 어릴 적 모습도, 젊음도 가셔버린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녀를 알아본 것이다.
자주 만나는 사이일수록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 같은데 자리는 깔렸지만 화제 빈곤이었다. 겨우 사는 곳과 아이들이 몇이냐는, 극히 기본적인 이야기만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이곳에 안주하고 살아온 나에게 고향이란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는다. 자세히 언급하자면 자동차로 20여 분만 달리면 나오는, 가고 싶을 땐 언제든 갈 수 있는 지척의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이제껏 고향이란 단어에 무감각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명절 때만 되면 언뜻언뜻 티브이 화면을 통해 봤던 실향민들. 우리나라 최북단인 임진각에 제상을 차려놓고 갈 수 없는 고향인 북쪽을 향해 절을 하며 울부짖던 그들이 이해가 안 되어 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들을 이해하기까지는 병원에서 건강상 어떤 특정 음식을 제한할 때 그 음식에 더 구미가 당긴다는 것을 알고부터였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산 넘고 물 건너 이역만리 해외 입양아들도 다를 바 없다. 맥이 끊긴 먼 타국에서 살아가는 그들조차 고향, 즉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한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일 터. 자라면서 현지인들과 모습이 다르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문을 품었을까. 답답한 마음에 “너는 누구냐”고 자신을 향해 수없이 되물었을 터.
성장한 그들이 부모를 찾고자 고국을 찾는 발길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흔적이라고 해봤자 달랑 아기 적 사진 한 장이 전부…. 대부분 무거운 발길로 돌아서는 게 부지기수라지만 더러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어머니를 찾고자 벨기에에서 온 여인이 경찰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모녀 상봉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생김새만 한국인일 뿐, 외국인이 돼버린 낯선 딸의 손을 잡고 찍은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입양 보냈노라는 어머니의 구차한 변명에도 딸은 토를 달지 않았다. 오직 어머니를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꼬옥 끌어 않았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충만했으리라.
그날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향순이는 말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속에 담아 두었던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이 부러웠노라고.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내가 어리보기여서일까. 당시 나는 빈, 부라는 개념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어울려 놀았을 뿐인데 불우한 환경의 어린 향순이에겐 생활이 여유롭고 화목한 우리 집 분위기가 롤 모델이었던가 보다.
바람대로 이곳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그녀는 남매가 모두 대학생이라며 씨익 웃고는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