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살이

시인의 말

1부 부르심의 끝에는
닭이 운다·12
말구유에 누우시다·13
거룩한 낭비·14
말고의 귀·15
자식이 죽을 때·16
부활의 사랑·17
만남·18
마중물·19
질그릇·20
일어나 걸으라·21
가죽옷 한 벌·22
배롱나무·24
매미소리·25
새 옷을 입고·26
쑥부쟁이·27
허수아비·28
왜가리 한 마리·29
봄비 오시는 날·30
첫사랑·31
신을 벗으라·32
오후 5시 인생·33
석남 꽃 머리에 꽂고·34
귀뚜라미 소리·35
헌물·36
뜨락에서·37
초록으로 번지다·38
선교지에서·39
모른다는 죄·40
기도·41
새 가족이 되어요·42
귀향·43

2부 내려놓고 나니
브니엘의 아침·48
별 밭에 씨를 뿌려·49
복이 있다 하시오매·50
꽃차를 우려내어·52
강아지풀·53
못다 핀 꽃·54
레아의 기도·55
복수초의 다른 이름·56
볕 바라기·57
행로·58
낮잠·59
새의 노래·60
내 얼굴을 보며·61
스마트폰을 잃고 싶다·62
사랑의 동산에서·63
여뀌꽃을 수놓으며·64
산다와 산다·65
어정쩡한 사람으로 사는 것·66
스스로를 때리는 말·67
십 년 살이·68
꽃밭에서·69
화조도를 그릴 때·70
눈 내리는 날에·71
이천 년 살고 있는 주목·72
나는 나를 모른다·73
어느 일생·74
홀로 된다는 것에 대하여·75
숨은 노력·76
매화 피는 시절·77
다육이 키우기·78
예송리 바닷가·79
동천석실 - 윤선도를 만나다·80
오일장터에서·81
발자국·82

3부 열리는 빈칸
길갈의 아침·84
순결한 용기·86
마길에게·87
은혜살이·88
스데반의 순교·89
여 제자 다비다·90
무두장이 시몬과 베드로·91
평생이라는 선물·92
바울에게·93
흐르는 것들·94
대문에 달아 두었네·95
계산하지 않았다·96
헌금·97
연극처럼 사는 사람·98
늙은 호박·99
친구·100
봄맞이·101
남이 되는 나·102
별이 된 친구에게·103
손길·104
감사·105
소중한 만남들·106
가식일지라도·107
말기암의 회생·108
부러진 것들·109
엄마·110
달과 눈 맞추다·111
순례자·112
누군들 꽃 같은 세월만 보냈겠는가·113
천성 가는 길·114
한 자락의 기도·115

표정 - 하나님의 흔적을 품고·116

*은혜살이

봄꽃 쳐다보듯 마주 보며 웃는 사람
속마음 열어 편지처럼 읽어주는 사람
별일 없어도 핸드폰 목소리로 종알대는 사람
아프다는 말에 바람보다 먼저 와 준 사람
실수가 아니라고 깍지 손 껴주는 사람
손뼉 쳐주며 속마음까지 채워주는 사람
느린 보폭을 맞춰주며 낮아지는 사람
작은 자의 눈물 속 간절함을 읽는 사람
손안에 사랑이 수박 속처럼 붉은 사람
유행가 가사에도 하나님 음성을 듣는 사람

만남을 주선해 주신 거룩한 통로에서
나는 누구로 살아왔을거나

*거룩한 낭비

머리에서 흐르던 향유가 발끝을 적실 때
쏟아붓는 여인의 숨길이 멎어
천상의 향으로 아득한 몽혼
세상 모든 허기를 받아 든 깊은 강줄기에
몸을 던져 건너오는 달의 향기를 기억해다오
뒤돌아보지 않아도 따라오던 발걸음과
보이지 않아도 어디서고 만나는 그리스도
가시관에 헝클어진 머리칼에서도
채찍으로 붉게 젖은 등허리에서도
향기로운 기름의 잔상이 남아
쏟아부은 손길의 체온이 남아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도
마지막 떨구는 핏방울도 향기로웠다

*말고의 귀

뜬소문에 미혹되어 닫혀버린 귀와
바지랑대의 끝 바람 같은 욕망이
새벽 감람원 가는 길에 앞장섰다
사탄은 예수께 입 맞추고
제자는 칼을 뽑았다
앞장선 말고의 귀가 잘렸다
베어져 나가 땅에 떨어지는
채 식지 않은 어리석은 귀를 주워
다시 붙여주시며 만지시는 손
달빛보다 밝은 희고 맑은 손
몇 번을 만져 봐도 다시 돌아온 귓속말은
나는 너도 사랑한다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렸다
몽치를 든 자도 칼을 든 자도
입을 맞추며 거짓웃음을 흘린 자도
새벽 먼빛 속에 홀로이신 그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