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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72132835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5-07-11
책 소개
★유시민 작가가 윤석열에게 추천한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후속작
★공판 분야 국내 유일 블랙벨트 검사
“삶의 비극 앞에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일은 종종 무력하다.
아무리 유죄를 입증하고 형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매번 낯선 얼굴로 찾아오는 슬픔을 다 가릴 수 없다.
그렇지만 애를 써보는 것이다.”
20년 차 ‘외곽주의자’ 검사가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2021년 11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시민 작가는 한 방송에 출연해 윤석열 후보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여기에서 유 작가는 정명원 검사의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이라고 대답했다.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검사가 어떻게 일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전작에서 ‘사람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데 인간에 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정명원 검사가 이번에 한층 깊어진 사유를 담은 신작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으로 돌아왔다. ‘검찰 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인간에 대해, 법에 대해 다층적인 고민을 던져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번 책에서 그는 오직 유죄 혹은 무죄로만 나뉘는 형사법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복잡다단한 결들이 엉겨 붙어 있다는 데에 천착한다. 그래서 이 책은 틀에 박힌 공소장 이면과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고자 애쓴 흔적이기도 하다.
저자는 탐욕과 무책임과 이기심, 체념과 합리화가 섞인 이 세계에서 그 상흔을 지우는 법을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 가 앉으려고 한다. 친아버지 살인미수죄로 구속되었으나 자식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통곡 앞에 존속살해예비죄 대신 어머니에 대한 특수협박죄로 바꾸어 기소한 사건, 두부 공장에서 손가락 마디가 잘린 채 수십 년간 고되게 일했으나 결국 횡령죄로 기소된 공장장의 가슴 아픈 사연,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가해자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 도리어 돈이 든 합의서를 내미는 피해자 가족의 선처에서 저자는 애쓰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악의 얼굴도 정의의 얼굴도 아닌 평범한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며 알게 된 사실을 이 책에 담았다고 말한다.
오은 시인은 “그동안 이 시대의 검사(檢事)를 흡사 칼을 다루는 검사(劍士)처럼 느껴왔다면, 정명원의 책을 읽으면서 검사에 대해 남아 있는 편견마저 산산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며 이 책에 추천의 말을 더했다.
“형사법의 세계에서 인간은 대체로 유죄이고, 가끔씩 무죄지만, 그런 뻔한 것들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죄와 무죄의 틈바구니를 애써 버티는 힘으로 사람의 역사는 쓰인다. 그러므로 검사로 일하며 내가 매일 마주한 것은 시커먼 악의 얼굴도 청명한 정의의 얼굴도 아니다. 다만 애쓰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얼굴이다.”(8쪽)
“두부 공장 횡령 사건·법정의 연기자들·
존속살해예비죄의 아들·검찰청 여사님들의 꽃놀이
작가지망 검사의 공소장…”
입증되는 세계와 입증되지 않는 세계까지
샅샅이 파헤쳐 되살린 공소장 이면의 기록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의 1부에서는 저자가 경험했던 실제 공소 사건들을 바탕으로 ‘사건 외곽의 풍경들’을 들여다본다.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서 ‘삼촌’이라 불리며 아이들을 회유, 협박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한 남자, 성공에 대한 확신과 폼생폼사로 살았던 어느 젊은 사업가가 사기죄로 인해 한없이 무너져내린 단 몇 개월간의 시간, 불법촬영물 범죄로 잡혀 왔으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연기로 법정의 모두를 숨 막히게 했던 피고인의 웃지 못할 사연 등 공소장에 못다 기록한 사건 이면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2부에서는 선배 검사의 방에 더부살이하던 저자가 민원실 옆방을 배정받고 곤욕을 치른 경험, 법무연수원 교수로 근무하던 시절 ‘쪽박산’을 오르며 다시 한번 ‘비주류 검사’로서의 입지를 다지던 기억, 회식 자리에서 2인자에게 술을 따르지 않아 한때 사직서까지 고려해야 했던 검찰 내부 문화에 대한 내적 갈등까지 매회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가득 담겨 있다.
3부에서는 tvN 〈유 퀴즈〉 출연 당시 보여주었던 올리브그린색의 도시, 상주 지청장으로 지냈던 시간들을 들려준다.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감 수확철에는 검찰청 소환 조사도 미뤄지는 곶감 시티 상주, 첫 출근길에 할미꽃 화병을 건네는 ‘심쿵 요정’ 사무처장님 이야기, 검찰청이라는 삭막하고도 살벌한 곳에 뿌리내린 할미꽃을 시작으로 상주지청의 검사 3인방 B·T·S의 활약, 구내식당에서 매일 제철 재료로 검찰청 식구들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는 성 여사님과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권 여사님과의 에피소드 등 풍성한 ‘이끼 검사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떠나지 않고 여기에 있다. 무너질 듯 위태롭게 기록이 쌓인 검사실 책상 귀퉁이에 시를 붙여두고 한 번씩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날로부터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18년쯤, 출근을 하고 사건들을 마주하고 가끔 뿌듯해하거나 간혹 후회하며 어쨌든 검사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범죄로 구성되는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세상과 삶이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도 아련한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입증되는 세계와 동등하게 입증되지 않는 세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290~291쪽)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에 대해 낙관을 잃지 않는 것이
법을 다루는 이들이 가져야 할 본분이다”
범죄라는 이름의 재난 속에서도
끝끝내 삶의 결을 헤아리는 눈부신 마음
사법에 관한 불신이 가득한 시대다. 특히 검찰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그만큼 출간을 앞두고 저자의 고민도 깊었다.
“이 시대에… 검사된 자가 책을 낸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될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보는 날들이 많았다. 나는 마치 무너져가는 왕국의 성곽에 꽃을 심는 한가한 정원사가 아닌가 생각해본 날도 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애초에 이 성곽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조금 더 명확해진다.”(8쪽)
저자는 범죄의 땅을 일구는 방식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반성과 촉구가 내려앉고 있으며, 그리하여 검찰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해갈 것이라며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 땅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바는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렇게 답을 찾아본다. “범죄라는 이름의 재난 앞에 소중한 이들의 다정함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는 것”.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에 그 낙관을 위한 애씀의 흔적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농부의 딸은 세상에 나가 검사가 되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범죄라고 이름 붙은 것들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그에 마땅한 답을 고르는 일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을 잘 해내려면 먼저 토양이 되는 사람들의 삶의 결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다만 황막한 범죄의 현장일 뿐이지만 어느 과거에는 바다이거나 산이었을지 모를 땅의 역사를, 그 땅 위에 내려앉았을 어둠과 바람과 햇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유죄와 무죄로만 구축되는 이 옹졸한 세계에서 인간에 대해 희망을 품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고 말 것이므로.”(305~306쪽)
목차
프롤로그
1부 사건 외곽의 풍경들
작가 지망 검사의 공소장
대단한 그녀
법정의 연기자들
존속살해예비죄가 품고 있는 세계
싸움의 기술
고등어 삼촌의 지하실 왕국
사기와 패기 사이
두부 공장 횡령 사건
어떤 씨닭
지역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오고 나서
세상의 끝, 그녀의 집
우리가 끝내 믿어보는 어떤 것
수사가 끝난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는 시작되지
2부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공판부장 J검사의 하루
나의 사무실 변천사
어떤 검사를 움직이는 힘
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 1
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 2
쪽박산을 위하여 건배!
검사 엄마 2
민원인의 송곳 끝이 나를 향하던 순간
검찰청 생활체조동호회
나의 댄스: 현재와 과거와 미래
경직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오늘도 무사히, 우당탕탕 공판부
3부 시골지청 안단테
시골지청 안단테: intro
여기는 심쿵요정들이 살고 있어요
웰컴 투 곶감 시티
여사님들의 꽃놀이
B검사는 버섯이 싫다고 했었지
해피엔드를 향하여, 구속영장
장화를 샀다
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 스타벅스에 간다
물끄러미와 넌지시 사이에서
굿바이 상주, 올리브그린색 작별
에필로그
추천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형사법의 세계에서 인간은 대체로 유죄이고, 가끔씩 무죄지만, 그런 뻔한 것들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죄와 무죄의 틈바구니를 애써 버티는 힘으로 사람의 역사는 쓰인다. 그러므로 검사로 일하며 내가 매일 마주한 것은 시커먼 악의 얼굴도 청명한 정의의 얼굴도 아니다. 다만 애쓰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여기에 조금씩 기록해보았다. 거기에는 직업병처럼 미간을 좁힌 채 각자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분투하는 나와 내 동료들의 표정도 들어 있다.
확인되지 않은 괴벨스의 어록 중에 ‘100퍼센트의 거짓보다 1퍼센트의 진실이 섞여 있는 쪽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해야 할지 그녀는 100퍼센트 진실일 수 있는 영역에도 습관적으로 거짓을 섞었다. 그리하여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마침내 진실이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일 자체가 허망한 것이 되기까지 그녀는 삶의 전방위에서 끊임없이 거짓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사기꾼으로서 그녀의 위대함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그 판단의 기로에서 내 마음의 축을 조금 기울인 것은 앞으로도 가족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그들의 남은 삶이었다. 어쩌면 무모하고 비논리적이고 모순 가득한 가족애라는 이름의 희망. 어떤 행위가 어떤 범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는 일에 그런 비정형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을 섞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의 일을 다룸에 있어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온당한가 하는 생각으로 오래 창밖을 응시하게 되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