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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한국미술
· ISBN : 9791172133504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25-11-20
책 소개
우진영은 그 명제를 글로 증명해냈다.” _최열, 미술사학자
★“이 책 속 우리 작가들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예술과 어울리는 이유를 깨닫는다.” _장명숙, ‘밀라논나’
“시대를 건너 두 예술가가 만난다면 어떨까?”
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우리 그림 이야기
지난 1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별들의 경매’에서 김환기의 1971년작 ‘푸른 점화’가 약 123억 원에 낙찰됐다. 한국 미술품 경매 역사상 두 번째 최고가를 경신하며, 한국 미술의 존재감과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한국 미술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우진영의 빛나는 첫 책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가 출간됐다. 이 책은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교차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일제강점기, 광복과 한국전쟁 등 시대적 어려움을 통과한 예술가들의 고민은 21세기 서울이라는 숨가쁜 도시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고민과 연결된다. 여성을 향한 사회적 편견에 예술로써 맞선 근대 작가 나혜석과 현대 작가 이재헌, 유한한 삶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좇은 김환기와 손승범, 타인과 온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그림에 담은 구본웅과 이우성 등이 시대를 건너 만난다. 삶의 본질과 가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열망은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오버랩된다. 저자는 5개 부에 걸쳐 총 47인의 근현대의 예술가를 연결하며,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미술 여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근대미술에 대한 애정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쓰인 이 책은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칼럼 등의 글을 전면 보완하고,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현대 작가들의 내밀한 인터뷰를 추가해 만들어졌다. 여기에 김환기의 대표작 〈론도〉 〈영원한 노래〉,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여인〉, 장욱진의 〈마을〉 등 근현대 걸작을 포함한 100여 개의 도판이 풍성히 수록되었다. 작품의 필치와 색채,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텍스트, 그리고 이와 부드럽게 연결되는 도판 이미지는 마치 직접 도슨트를 듣는 듯한 감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전통과 모더니즘이 교차하는 미술관으로, 작품이 시대를 건너 말을 거는 진귀한 순간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삶을 지켜내며 피어난 예술이 여기에 있다”
시대의 변화와 공명하는 예술가들의 분투
그렇다면 한국의 근현대 미술 세계는 서로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1부 ‘나와 당신의 도시’는 경성과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을 담은 풍경화들을 소개한다. 근대의 예술가 김주경은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1927년)에서 서양식 건물이 들어선 거리를 통해 변화하는 1920년대 경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저자는 “유화라는 서구의 매체”와 모던한 화풍에 주목하며, 현대적 변화에 대한 김주경의 자부심을 포착한다. 한편, BTS의 RM도 그의 그림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지며 더욱 주목받게 된 현대의 예술가 정영주는 〈도시-사라지는 풍경 531〉(2020년)에 불 켜진 작은 판잣집이 빼곡한 달동네 풍경을 담았다. 캔버스에 전통 한지를 켜켜이 덧댄 기법에서 저자는 재개발 광풍 속에서 사라지는 옛것들을 향한 정영주의 따뜻한 시선을 알아차린다. 시대를 불문하고 자꾸만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는 도시, 그 속에 엇갈리는 감정들이 일렁인다.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은 외지인·여성·장애인 등 시대적·사회적 체제에 의해 경계로 떠밀린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혜석의 〈자화상〉(1928년)에는 공허한 눈빛의 여성이 나온다. 그 모습에서 여성의 주체적 욕망을 금기시하던 억압적 분위기에 순응하고 싶지 않은 나혜석의 솔직한 감정이 읽힌다.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이재헌의 〈아이돌〉(2020~2023년) 속 여성은 하늘하늘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웃지 않는다’. 늘 방긋 웃는 아이돌의 표정을 재현하는 대신, 얼굴 이목구비를 과감히 뭉갰다. 저자는 과거의 나혜석과 오늘날 여성 아이돌을 연결해,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젠더 역할을 탈피해 ‘나’로 살고자 분투하는 여성들의 초상을 좇는다.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계절감을 다룬다. 한국추상미술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백영수의 반추상화 〈여름〉(1953년)은 한국전쟁 시기 그려진 작품으로, 명랑하고 선명한 색감으로 가득 차 한여름의 열기를 내뿜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그의 작품이 유미적이라 평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선연한 색채와 태양에 맞선 해바라기 형상에서 전쟁의 포화에도 꺾이지 않는 예술가의 의연함을 포착한다. 한편, 이내의 〈기억-마음에 담은 별〉(2022년)은 수만 개의 작은 점으로 여름 밤하늘을 표현했다. 차분한 색채가 여름밤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저자는 마치 수행하듯 작은 원 하나하나를 그려내는 예술가의 타오르는 인내심을 헤아린다. 상반된 여름 풍경화를 그린 두 예술가의 뜨거운 마음이 캔버스 너머로 맞닿는다.
김환기와 손승범의 ‘유한한 삶의 리듬감’
구본웅과 이우성의 ‘타인과 나누는 온기’…
근대 작가의 얼굴을 복원해 현대와 연결하는 새로운 경험
4부 ‘내면의 소용돌이’와 5부 ‘삶에 흐르는 이야기’는 삶의 본질적 요소들에 주목한다. 4부에는 예술가라는 자아가 지닌 욕망과 불안이 담긴다. 19세기 중반, 정조의 어명으로 책가도를 그렸던 궁중 화가 이형록은 〈책가문방도8폭병풍〉(19세기 중반)에 왕의 취향을 철저하게 반영하는 한편, 그림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숨겨 찍어놓는다. 은인(隱印)을 한 것이다. 이형록은 생애에 두 번 이름을 개명하고, 개명할 때마다 책가도의 화풍을 실험적으로 변화시켰다. 궁중 화가이기 전에 한 명의 예술가로서 품었던 단단한 에고가 엿보인다. 현대의 화가 이돈아는 〈시공연속체〉(2020년)를 통해 전통적인 책가도와 현대 도시의 화려한 밤풍경을 교차시킨다. 저자는 중첩된 시공간에서 불가능한 희망을 읽는다. 이돈아는 과감히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며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21세기의 책가도를 완성한다. 현실의 한계에도 구부러지지 않는 예술가의 자아가 꿈틀댄다.
책에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 무엇이든 실현 가능하기에 우리는 책에 손을 뻗는다. 200여 년 전 이형록은 〈책가문방도8폭병풍〉에 진귀한 기물들을 채워 넣으며 귀퉁이 칸을 빌려 아주 작게 자신의 이름을 남겨두었고, 현대의 이돈아는 〈시공연속체〉 사면을 책으로 둘러싸듯 그리며 중앙의 여백에 비뚤어진 선과 마천루 건물을 중첩시켰다. 두 화가 모두 자아를 지켜내고픈 욕망을 새긴 것이다. (중략) 간절함에 기대가 붙으면 괴로워진다. 욕망을 드러내면 자칫 자의식에 사로잡힐까 두려워진다. 책가도를 떠올리며 나만의 바람을 슬며시 넣었다. 무더운 여수의 여름밤에 새긴 나의 은인이었다. _230~231쪽
마지막 5부에는 사랑·우정·연대 등 삶의 외연을 넓히는 가치들을 다루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구본웅은 〈친구의 초상〉(1935년)에 지기였던 시인 이상의 얼굴을 캔버스 가득 담았다. 당시 이상에게는 죽음이 찾아오고 있었다. 깊은 슬픔이 담긴 듯 짙은 명암과 병색을 덮듯 거칠고 대담한 필치가 구본웅의 요동치는 마음을 말해준다. 반면 이우성의 〈해 질 녘, 산에 올라가서〉(2024년)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한데 모여 3미터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들은 타인이지만 자유롭게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곡선과 따뜻한 색채에서 현대사회 속 인간에 대한 믿음과 다정이 느껴진다. 오직 한 명을 향한 두터운 마음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느슨한 연대가 우리에게 온기를 나누어 준다.
1935년 작인 〈친구의 초상〉은 그때의 작품이다. 구본웅의 마음은 어땠을까. 슬픔이 몰려온다. 명암이 짙다. 저려온다. 어두운 색 속 통증이 숨어 있다. 실제일까, 변형일까에 대한 답을 찾았다. ‘다르지만 일치한다.’ 이상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실제 이상이 직접 그린 〈자화상〉(1928년)과도 다르다. 구본웅은 자신의 이상을 붓질에 담아냈음을 깨달았다. 시대를 자조적으로 야유한다. 짙게 드리운 병색을 덮듯이 오만한 자아를 표출한다. 〈친구의 초상〉에는 구본웅과 이상이 함께 있다. 창백한 한쪽 뺨을 쓰다듬고프다. 그들은 닮았다. 지기(知己)이라는 단어를 읊조려본다. _349쪽
“경성에서 서울까지, 도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인문학적 사유가 이어지는 예술의 길목에서
이 책은 김환기·이중섭·장욱진·박서보 등 유명한 근현대 예술가뿐 아니라, 주경·문우식·임용련·임군홍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예술가들을 호명한다. 일제강점기 이인성의 회화 속 서양식 복장을 한 여성을 감싸는 따스하고 토속적인 색채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1930년대 구본웅이 캔버스에 거친 붓질로 토해내는 감정은 서양 표현주의의 거장 에밀 놀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힘을 전해온다. 경성의 페미니스트 나혜석과 한국전쟁기 프랑스로 향한 이성자의 일생은 근현대 격변의 시기를 지나온 여성 예술가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강한 열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녹과전이 내포한 바 발랄한 패기, 견고한 저력, 약동적 정신, 이 모든 것은 앞날의 우리 화단에 원력소가 아닐 수 없을 것.” 1938년 열린 제3회 녹과전 (임군홍의 작품)에 대한 화가 구본웅의 찬사다. 임군홍은 1936년 양화 단체인 녹과회를 직접 창립했다. 새로움을 구했고 도전에 거침없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의 삶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중략) 미지의 세계를 겁내지 않았다 _296쪽
‘핍진하고’ ‘애달팠던’ 시기 속에서도 우리 예술은 꽃을 피웠다. 약 10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가려져 있던 근대 작가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고 그들의 작품 세계를 복원해 현대 작가의 작품 세계와 연결해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새로울 뿐 아니라, 각각의 작품이 놓인 자리를 초월해 작품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미술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근대 작가가 시대의 어려움과 억압을 견디며 남긴 흔적은 과거의 산물로만 남을 수 없다. 인문학적 사유는 이어져 현대 작가가 자기 내부의 균열을 탐구하며 쌓아올린 실험과 연결된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마다의 고뇌와 답을 품고 있다. 이 책은 서양 미술이나 조선시대 중심의 기존 미술 교육에서는 채워지지 않던 공백을 메워주고, 지금의 우리 예술이 어떤 시간을 거쳐 어디에서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근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저자의 문장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캔버스에 짙게 배인 이야기에 공감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더 깊이 귀를 기울이며 주변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작품이 시간을 건너 말을 걸 때
1부 나와 당신의 도시
경성과 서울을 거닐다: 김주경과 정영주
[부록]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 정영주 작가 인터뷰
냉정과 열정 사이: 주경과 노은주
[부록] “멈춘 듯 계속해서 변화하는”: 노은주 작가 인터뷰
분투하는 도시에서: 문우식과 민준홍
[부록] “과장과 거짓 없이”: 민준홍 작가 인터뷰
풍경 너머의 이야기: 이상범과 권세진
[부록]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작업”: 권세진 작가 인터뷰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
떠나온 이들의 시선: 엘리자베스 키스와 김현철
[부록] “대상의 참모습을 향하여”: 김현철 작가 인터뷰
시대 속 여성들의 목소리: 이인성과 정수정
[부록] “자유롭고 용기 있는 여성들”: 정수정 작가 인터뷰
당신의 십자가에 축복을: 임용련과 서민정
[부록] “동시적인 삶의 경험”: 서민정 작가 인터뷰
장애와 상처 너머: 김기창과 현덕식
부유하는 존재의 몸짓: 송혜수와 이혁
[부록] “충돌과 혼란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이혁 작가 인터뷰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
색으로 그린 계절: 오지호와 김현수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장우성과 빈우혁
[부록] “그리기는 삶의 연장선”: 빈우혁 작가 인터뷰
한여름 날의 꿈: 백영수와 이내
[부록] “기억이 변하는 과정을 따라”: 이내 작가 인터뷰
겨울 동화 속 눈 내리는 풍경: 이성자와 이채원
[부록] “기저에 서린 온기를 잃지 않기를”: 이채원 작가 인터뷰
4부 내면의 소용돌이
반듯함 속의 불안: 이형록과 이돈아
[부록] “인간의 바람이 시대를 넘어 이어진다”: 이돈아 작가 인터뷰
자의식이 빚어낸 조각들: 권진규와 권오상
[부록] “파격과 개연성은 함께 간다”: 권오상 작가 인터뷰
토해내거나 비워내거나: 박서보
꿈속의 장면: 장욱진과 최민영
[부록] “자연이 주는 찰나의 순간”: 최민영 작가 인터뷰
몸에 대한 사적인 기록: 문신과 강철규
[부록] “나약함과 강인함의 번복”: 강철규 작가 인터뷰
5부 삶에 흐르는 이야기
영원을 꿈꾸고 사라짐을 맞이하는: 김환기와 손승범
[부록]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손승범 작가 인터뷰
얼굴이 말해주는 것: 박수근과 김정욱
흘러가는 가족의 서사: 이중섭과 류노아
[부록] “더 많이 말을 거는 작품”: 류노아 작가 인터뷰
타인의 고통과 나의 아픔: 임군홍과 우정수
[부록] “과정 속에서 형태를 찾아가는”: 우정수 작가 인터뷰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구본웅과 이우성
미주
참고문헌
책속에서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속 화면을 가득 채우는 콘크리트 건물은 1927년 당시에는 도시의 변화를 드러내는 낯선 풍경이었다. 2023년 한국의 도시에서는 그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익숙한 실재다. 동시대 작가 정영주는 위용을 자랑하듯 뻗어 있는 도시의 흔한 고층 건물들이 아닌 산동네 사이사이에 숨겨진 듯 자리한 판잣집을 그린다. 김주경은 그 시대가 맞이한 근대 도시의 생생한 변화를 드러냈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기를 경험한 근대화가 김주경이 변화하는 도시 경성의 새로움에 매료되어 이를 화사하게 드러냈다. 정영주는 반대로 도시의 시계추를 되돌려 스스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새로움이 일어난다. 변화하고 움직인다. 지나가고 흘러간다. 머물고 떠난다. 잊히고 그리워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그러하다.
〈스틸 라이트 2〉의 무채색이 안고 오는 투명함이 무심하게 다가온다. 아니다. 그리 믿어지지 않는다. 노은주의 그림 곁에 머무르면 알게 된다.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단단함이 있음을. 물렁한 것들이 스스로 형태를 다져가고 있다. “그렸던 대상이나 재료들을 바로 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작업실에 두고 관찰한다.” 노은주의 고백이다. 시간을 두고 스스로에게 정교한 질문을 건넨다. 그림 속 실낱같은 가지가 더 이상 위태롭지 않다. 꽃들은 이야기한다. 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의 차가운 정물화에 불이 켜졌다.
1957년은 전진의 해였다. 나아가야 했다. 전쟁이 남긴 피폐함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명동은 변화의 중심지였다. 상처는 더디게 낫는 법이다. 감추려 해도 드러난다. 눈치 없이. 실마리가 잡힌다. 〈성당 가는 길〉에 구현된 형태의 세련됨 속에 고단함이 엿보이는 이유에 대해. 도시에 슬며시 얽힌 정서를 포착했다. 그 기민함에 가슴이 두근댄다. 문우식이 시대와 호흡한 작가임을 증명한다. 얽매이지 않는 예술가였다. 그는 1948년 남관미술연구소에
서 그림을 배웠다. 1952년 부산 피난지에 임시 교사를 세운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서 공부했다. 김환기에게서 당대 추상의 최신 기류를 흡수했고, 이중섭과 벗하며 표현파적 미감을 키웠다. 문우식의 개성적 필치는 피어났다.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