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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72241308
· 쪽수 : 490쪽
· 출판일 : 2024-05-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선구자들의 함성
민족 계몽과 재림신앙의 선구자 임기반 ― 임춘식
한국 재림교회의 시작: 구니야 전도사 ― 카지야마 쯔모르(梶山積)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 정재용
애국애족의 선두에서: 정재용 선생 ― 정사영
일제 말기의 시대상: 일제강점기의 교회 상황과 수기
일제 말기 교회 탄압과 재림교회 상황 ― 김재신
일제강점기의 수기: 최태현 목사의 순교 ― 최희만
인생의 뒤안길에서 ― 김명길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유영순
역경의 파고(波高)를 넘어 ― 강태봉
적목리 공동체의 함성
공동체 배경 ― 김재신
공동체 개관 및 성격 ― 이종근
공동체 수기: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 ― 신태식
적목리 공동체 총무로서 ― 신태복
나의 아버지 신태식 목사 ― 신우균
아 하나님의 은혜로 ― 반내현
적목리~민족혼이 살아 숨 쉬던 곳 ― 반상순
부친 반내병 장로를 생각하며 ― 반정일
인고(忍苦)의 세월을 넘어 ― 노사라
적목리 회고 ― 오춘수
사선(死線)을 넘는 하나님의 은혜 ― 최명기
나의 형님 김봉락 장로에 대한 회상 ― 김형락
어둠을 비추던 빛 ― 이대련
또 하나의 적목리 이야기, 신태식 목사님과 나의 누님 ― 신계훈
다른 지역의 함성
지리산 공동체: 신앙의 피난처, 명산(名山) 지리산 ― 최희만
하송관 공동체: 한국인 왈덴스(Waldenses) 가족 ― 조광림
서울 공동체: 이성옥 목사 집의 모임 ― 김재신
순안 공동체: 김호규 장로 댁의 가정 집회 ― 김재신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신태식(申泰植)은 1901년 8월 21일에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마달리 가래골에서 신군오 씨의 5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전수하고 14세에 초등학교로 전학하여 1915년 3월에 화서사립학교를 졸업하였다. 19세 되던 1920년 5월 29일에 김태순1 양과 결혼하고, 결혼 후 22세에 원산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고생만 하고 여의찮아 귀가해서 취직하여 6년 후인 37세 되던 1938년에 자영하게 되었다. 신태식은 ‘성서 총람’을 읽고 안식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한 친구네 집에서 시조를 읽는 가운데 안식일 진리를 깨닫고 1937년 6월 6일부터 가족적으로 예배드리기 시작하였다. 어머님이 고향 안식일교회 이숙자 전도부인이 인도하는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게 되었다.
1939년에 황우광산(黃牛鑛山)이 새로 개광되었는데2 강원도에서 지정 목재 책임자로 선임한 친구가 신태식에게 위임하였다. 그리하여 지정 목제 책임을 지고 운영하였다.
만일, 고 장로님의 책망이 없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체포될 뻔했었다. 나와 신태식 형님은 그 자리를 떠나 성동역에 가 있었다. 개천에 사는 김동규 씨가 따라와 “반 형이 그곳에 있었으면 체포될 뻔했고 가평역에도 형사대가 기다리고 있으며 가평의 형제들은 일본 형사들에게 일망 타진되었을 것이라”라고 전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노인들과 식구들과 어린아이들이 걱정되어 아찔하였다. 기차를 타고 가평 못미처 어느 역에서 내린 후 가평까지 도보로 잠입하여 혹시나 하여 경찰서 주위를 배회하다가, 우선 산속에 있는 은신처에 가보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아서 낮에는 민가에 숨고 밤을 기다려 눈 쌓인 산길 120리를 더듬거리며 찾아가니 다행히도 식구들은 안전하였고 모든 식구가 놀라며 맞이하였다.
70여 명의 식구들에게 서울 소식을 전한 후, 안전을 위하여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3일간을 숨어서 지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 거처의 주소를 경찰 본부에서 몰랐기 때문에 이곳까지 손길이 미치지 못하였으나 옛 주소 평강으로 조사가 갔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당들이 강제로 폐쇄되고 신자들이 흩어지고, 신사참배의 강압은 더욱 심해져 타협하지 않으면 더 이상 편안히 살 수 없었을 때, 아버님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떠나신 것이 하송관 생애의 시작이었다. 가난에서 벗어나서 좀 잘살게 되었을 때도 아버님의 그 굳은 신앙의 순례를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재산도 재물도 다 마다하시고 믿음의 꿈을 가지시고 하송관으로 향하던 때, 어머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그저 따라나서서 그 뒷바라지를 침묵과 인내로써 해내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생각하시며 더욱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분들이 아니었다면 그때에도 얼마든지 타협하며 적당히 부귀를 누리면서 살길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하송관과 적목리는 21세기의 남은 교회와 연결하는 건널목이 되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름도 영광도 없이 재림신앙을 왈덴스인들처럼 이어온 장한 사람들. 이제 우리들은 그들에게서 물려받은 이 믿음의 유산을 잘 간직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