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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거묵골 구조대 사람들](/img_thumb2/9791173180118.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3180118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4-10-31
책 소개
목차
등장인물
기억
불화수소
몰락
거묵골
꿈
소방 학교
작은 생명
그림
수어(手語)
고백
장애인
어쩔 수 없는 일
참전 군인
알아차린 시간
비상 정지 버튼
다가오는 슬픔
침묵의 대가
각자의 길
여기 사람 있어요
생과 사의 계단
눈
제자리
마치는 글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 어, 어.” 순간이었다. 도랑 옆 논두렁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볏짚단에서 허연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태우는 눈을 크게 뜨고 입만 벌린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미친 듯이 뛴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볏짚단에 숨어 있을 누나를 구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허연 연기는 곧 벌건 화염이 되어 이미 짚단 전체를 무섭게 삼키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화염은 맹렬하게 솟아올랐다. 어느새 나타난 영찬이와 정수까지 아이들은 놀란 눈만 커다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고, 항식이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불난 볏짚 주위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원해서 들어온 해군 특수 부대는 태우에게 가혹한 팔자를 한 번에 뒤바뀌게 할 수 있는 수도(修道)와도 같은 일이었다. 더 고통스럽고 더 괴로워야 누나를 죽인 자신의 죄가 씻겨 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학대하던 아비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물러서지 않았다. 훈련을 할 때면 가장 앞에서 뛰었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물속에서 숨 참기 훈련 때는 혼자서 4분이 넘는 시간을 버텼다. 이때부터 교관들과 동기들이 그를 독종으로 여기게 되었다. 까맣고 비쩍 마른 몸이었지만 독기 어린 눈이 태우의 성정을 보여 줬다.
미리 한국의 언질을 받았음에도 태우는 또다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지로 눌러야 했다. 발령 공문을 보자마자 아침 조회에서 대장은 태우의 인사이동 소식을 전 직원이 보는 앞에서 전했고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을 함께 근무했던 특수 구조대원들은 대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먼 산만 바라봤다. 그때 태우는 솟아오르는 모욕감을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이곳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며 일했다. 목숨 바쳐 일했고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지난 10년이 이렇게 끝난다는 생각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간단한 인사라도 하라는 대장의 말에 태우는 말없이 일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곧 중택이가 뒤따라 나오며 혼자서 태우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