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44843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9-05-30
책 소개
목차
말라버린 로즈마리
어떤 표정
돈을 줍는 비둘기
독박골이 어딘가요?
요셉이 업은 마리아
꿈꾸는 사마리아 인
라면 한 그릇
하늘에서 뛰노는 아이들
난장이가 되어버린 어른들
날개 잃은 장군
유기된 놀이터
독박골의 겨울
휘어진 십자가
사라진 도시
토담집의 서재
우리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도시가 변하는 건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다. 그걸 챙이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그녀가 도시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도시에서 소외됐다는 그녀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녀가 이미 스스로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이다. 버거웠던 것일까. 결국 그녀는 힘겹게 붙들고 있던 삶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내가 먼저 살아있는 목숨을 놔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나는 미국 국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민권을 신청할 때도 망설임이 없었다. 주저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포기했다. 존재감 없던 내가 한국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필요에 의해서 취득한 국적이지만 나에게는 미국시민과 한국인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조앤 플린으로 살아가든 양미래로 살아가든 중요한 건 지금까지 버텼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았냐가 중요하겠지만 빵을 먹고 살든 밥을 먹고 살든 생명이 붙어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나는 살아야만 했다. 정말로 살고 싶었다.
공기 중에 노출된 과자의 눅눅함처럼 습기를 머금은 침묵이 흘렀다. 나도 좀 전까지만 해도 망설이기도 했다. 막막했고 무슨 말을 꺼낼까 고심했다. 낭만적인 감정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일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만큼 그 시간을 응축시킬만한 강렬함이 끓어올라야 했다. 좀 더 극적이라면 마땅히 눈물이 흘러내렸어야 했다. 건조했다. 덤덤했고 아주 지루했다. 잔뜩 이물질이 껴있어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뭉텅뭉텅 공기마저 압축기에 빨려 나간 공간에는 연민도 애틋함도 그 어떤 그리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무미건조함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상대방은 나를,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붙들지 않으면 찬우의 존재는 금방이라도 비눗방울처럼 푹 하고 꺼질 것만 같았다. 그는 망설였고 나는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