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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방송연예인에세이
· ISBN : 9791187232186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0-03-25
책 소개
목차
응원의 글
칠두도 하잖아!_ 전유성(개그맨)
내가 본 모델 김칠두_ 이상봉(패션 디자이너)
모델계의 테리우스, 김칠두_ 오미연(탤런트)
인생의 후반,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 김칠두 선생님_ 최순화(모델)
프롤로그
야, 너도 할 수 있어!
응원의 그림
Part 1 질풍노도의 칠두
될성부른 떡잎
언터처블 막둥이
세상에서 가장 험한 등굣길
그래도 중학교는 마쳐야지 이놈아!
돈 버는 것 빼고는 못 하는 게 없었던 팔방미인, 아버지
책으로 익힌 공부, 몸으로 익힌 공부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 김칠두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고○○ 선생님
택시와 함께 날아간 대박의 꿈
그래도 고등학교는 마쳐야지 이놈아!
‘어쩌다 범생이’
순수한 친구들과 함께한 ‘문학의 밤’
출석 일수라도 채워라, 좀
Part 2 영원한 자유인
‘스지 의상실’ 미스터 김
꿈으로 끝난 모델의 길
싱싱한 배추와 무가 왔어요~
술과 장미의 나날들
77번 웨이터 김칠두
“저는 술 한잔 해야겠습니다”
어쩌다 직장인
사글세 보증금과 맞바꾼 포니 한 대
내 삶을 바꾼 린이의 우유 한 통
부천 미니슈퍼, 장사의 시작
슈퍼와 구멍가게 사이
마음의 고향, 남대문에서 밀려나다
‘아메리카상’의 꿈
꿈은 사라지고 몸은 강화도로
Part 3 마흔, 순댓국을 알 나이
강화도령, 채소 장수로 돌아오다
역마살이 낀 미다스의 손
순댓국집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대박 신화, ‘장터 순댓국’의 시작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칼질 퍼포먼스
순대 없는 순댓국집
고기를 삶아다 줘 봐!
시화에 꽂히다
‘털보 토종 왕순대촌’, 대박 신화의 시작
어쩌다 문을 연 영통 직영점
영통점 대박을 이끈 돼지갈비와 소곱창전골
007 뺨치는 순대 비법 찾아내기 대작전
체인점의 시작
복수혈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실패는 또 다른 실패를 부른다
Part 4 칠두, 런웨이를 날다
린이가 바꿔준 두 번째 인생
제2의 김칠두는 나?
김칠두 이전과 이후
패션의 완성은 주름살
모델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없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오뚝이 혹은 7전 8기
나를 성장시키는 경쟁심리
부록
화성에서 온 여자, 아내 이야기_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속 깊은 딸, 린이 이야기_ 아빠 하고 싶은 것 다 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들, 웅이 이야기_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에필로그
‘뜨아’와 믹스커피
리뷰
책속에서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고○○ 선생님
그렇다고 예전처럼 학교에 안 가거나 가출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중학교는 마쳐야지 이놈아!” 하시던 아버지의 슬픈 음성이 귓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즐겼다. 그것은 방과 후에 남대문시장이나 청계천 등을 돌아다니며 미군 용품을 사서 친구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미군용품’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주로 초콜릿이나 캔디, 껌 같은 종류였다. 아직 국내 산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이라 남대문시장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용물품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C레이션’과 같은 군용물품의 인기가 높았다. ‘가출 청소년’ 시절의 경험 덕분에 짭짤한 용돈 벌이를 한 셈이다. 어른이 되어 한때는 손대는 장사마다 대박이 나면서 ‘장사의 신’ 소리까지 들었던 것도 어쩌면 이때부터 그 싹을 보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77번 웨이터 김칠두
‘77번 웨이터 김칠두!’ 왠지 예감이 좋았다. 평소 나이트클럽 문화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일도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부닥쳐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일단 처음에는 내 손님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돈을 만질 수가 없었다. 결국, 신입 웨이터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전단 배포였다. 친구와 나는 영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전단을 돌렸다.
...
하지만 웨이터 생활은 오래 못 갔다. 단골이 늘어나는 만큼 외상도 덩달아 늘어나면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일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외상을 못 받아내면 내가 메꿔야 했다. 결국, 7개월 만에 웨이터 생활을 접고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
마음의 고향, 남대문에서 밀려나다
동대문 신평화상가에서 다시 옷가게를 열었다. 이번에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니라 남의 옷을 떼어다 파는 가게였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비교하면 남는 건 많지 않지만, 여러 디자이너의 옷 가운데 괜찮다 싶은 것만 모아서 파니까 ‘폭망’의 위험성은 덜했다. 하지만 동대문에서도 나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윤이 워낙 박했던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수로 빌린 돈의 높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남대문에 이어 동대문에서까지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나니 다시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참을 돌고 돌아 다시 신혼 초의 그 각박한 시절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빚까지 떠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