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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87239994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4-06-30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백화점은 이 유령 도시의 중심이었다. 위치적으로는 중심이 아니만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생존자 집단의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이 근방의 모든 식수, 식량, 약품은 그들이 독차지했다. 옥상에 세워진 커다란 안테나와 태양열 발전기는 그야말로 힘의 상징이었다.
책가방과 전경 방패를 메고 비닐봉지를 든 용이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보초들은 모두 검은색 벨벳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마 세상이 망하고 백화점이 버려졌을 때 매장 안에 남아돌던 비품이었겠지. 용이의 교복과 비슷한 분위기다. 주민등록번호가 무의미한 세상에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드레스코드가 명함이 된다.
용이가 보초들에게 말했다. "의뢰를 완수했다. 점장님을 만나게 해줘."
보초들은 군말 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점장실로 향했다. 발전기가 있지만 엘리베이터에 전기를 쓰진 않았다. 그럼 무엇으로 움직일까? 용이는 몰라도 되는 것에 고민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어리석은 학생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점장님.”
사무용 책상에는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는 괴팍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부하들과 구분되는 붉은색 벨벳 조끼를 입었는데, 불뚝 튀어나온 배 탓에 조끼 단추들이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여어, 고딩이군.” 백화점 패거리도 용이 이름을 알았다. 그러나 다들 고딩이라고 불렀다. “그 비닐봉지는 역시나?”
용이는 공손하게 비닐봉지를 점장의 책상 위에 올려놨다. 점장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비닐봉지를 열어봤다. 그녀의 호칭은 팀장. 명실상부한 백화점의 2인자였다. 항상 펜을 비녀 삼아 둘둘 만 머리를 고정했는데, 간부들에게만 허락된 붉은색 조끼엔 이름이 긁힌 듯 지워진 명찰이 달려 있었다.
“장군이 맞군요. 사후경직도 안 왔네요. 잡고 바로 오신 겁니까?”
팀장은 자기보다 어린 용이에게 경어를 썼다. 용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점장이 책상 위에 구둣발을 올리면서 칭찬했다.
“과연 폐교의 고딩이야. 확실하고 성실하지! 이러니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니까? 대체 이 솜씨는 어디서 배운 거야?”
“미적분 배우는 데도 3년이면 족한데, 5년 내내 사람만 죽였으면 익숙해지는 게 정상 아닌가요?”
“캬하하! 두 번만 겸손하다간 간도 빼다 바치겠군!”
점장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손뼉까지 치면서 깔깔거렸다. 팀장이 신호하자 밖에 있던 부하가 쇼핑카트를 밀고 왔다. 보존식과 생필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평소보다 과분한 양이군요. 다른 요청이 있으신지요?”
“에이, 딱딱하게 굴기는. 그냥 앞으로도 잘 지내자는 의미!”
고등학교를 3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