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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7413097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6-12-15
책 소개
목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고래의 맛
내 얼굴에 깃든 잠자
붉은 성
저 푸른 뿔을 보라
물미해안에 잠들다
● 작가의 말 | 안녕, 세상을 향해 날아갈 풍선 같은 작품들
● 해설 | 낡은 가족시네마의 예정된 루트 - 이정현
저자소개
책속에서
“세상에서 뭔 음식이 제일 맛나겠냐?”
과묵했던 아버지는 술만 한 잔 하시면 금방 기분이 흐물흐물해진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마음이 풀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어 주느라 제일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과 짜장면을 말했을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가져온 고래고기 먹어봤제?”
“네.”
“맛이 어떻더노?”
“비릿하고 질기고…….”
“허허, 네가 우찌 그 깊은 맛을 알겠노. 고래고기 맛은 말이다. 이 다음에 네가 시집 가서 자식새끼 낳고 살다보면 자연히 알게 될 맛이다.”
시집도, 고래고기 맛도 이해하기 어려운 먼 훗날의 얘기 같지만 아버지에게 고래고기 맛은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아버지는 고래고기가 맛있어요?”
“하모. 이 나이에 그 맛을 모르면 인생 헛 산 것이제. 고래고기는 뭐라캐도 꼬리살이 제일 맛있거든. 배 섬듯섬듯 썬 것에 참기름 한 방울 두른 육회 한 점 입에 넣으면 세상사 고민 다 잊어버릴 정도로 좋을 맛이다. 너는 아직 고래가 가진 12가지 맛을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의 맛이거든.”
“괜히 아버지 술 마시고 싶어서 하는 말 아니야?”
“아녀.”
“그러면 아버지만 아는 맛이란 말이잖아.”
스르르 눈을 감는 아버지의 눈가는 벌써부터 축축해지며 붉어졌다.
“나에게 고래고기 맛을 갈켜준 이는 육이오 때 생사를 같이한 전우였지. 아픈 형님 대신 온 놈인데 몸이 다부지고 인물도 잘 생겼는데 왼쪽 눈이 심한 사시인 거라. 그 놈은 군에 오기 전에 고랫배를 탄 놈이거든. 어떻게나 고랫배를 탔던 자랑을 하는지 나도 꼭 한 번 고랫배를 타고 싶어지더라니깐. 그래서 이 아버지가 말이다, 그 힘든 전쟁터에서 언젠가는 고래를 찾아떠난다는 그 희망 하나로 살아남았다는 거 아니겠나. 시퍼런 동해바다에서 고랫배를 탄다는 것은 진짜 사나이들만 하는 멋진 직업이지. 아버지 때부터 고랫배를 탔던 놈이라 그곳에 가면 언젠가는 한 번 만나볼 수 있겠지.”
우물우물, 똥집을 씹으며 먼 바다 위에 고랫배를 타고 있는 자신을 그려보는 그 순간의 아버지의 얼굴은 늘 붉고 기름졌다.
― 「고래의 맛」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