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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7756385
· 쪽수 : 154쪽
· 출판일 : 2019-05-1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벨링포젠 고원에서 ― 13
각시붓꽃 ― 14
생문(生門) ― 15
꽃문 ― 16
번행초 ― 18
귀룽나무 ― 19
레후아꽃 ― 20
동백나무 숲에 모이다 ― 22
나무는 걷는다 ― 24
별의 내부 ― 26
호랑가시나무는 모항에서 새끼를 친다 ― 28
꽃폭풍 ― 29
브로콜리 꽃 피다 ― 30
오이꽃 ― 32
나무는 나무에게 간다 ― 34
소광리에서 금강송 품다 ― 36
제2부
가벼운 것이 좋다 ― 41
달은 사막에서 운다 ― 42
도시의 어깨 ― 43
몸이 따뜻한 물고기 ― 44
안개는 젖은 채로 서 있다 ― 46
음악의 창고 ― 47
파란 T셔츠 ― 48
무의도(舞衣島) ― 49
폭포 그 강의 자궁 ― 50
빙하의 숨구멍 ― 51
풍경 이동 ― 52
가로지르기를 하다 ― 53
모과를 풍장하다 ― 54
채집한 꿈 ― 55
주발 ― 56
제3부
모자와 시 ― 61
고인돌 1 ― 62
고인돌 2 ― 64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1 ― 66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2 ― 68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3 ― 70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4 ― 72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5 ― 74
여섯 개의 푸른 병 ― 76
손주는 놀다 ― 78
얼음 호수 위에서 ― 79
껍데기 속에서 껍데기를 줍다 ― 80
귀를 접는다 ― 82
최고(最古)의 얼굴 ― 84
소금 바구니 ― 86
물방울 속에서 풍경을 읽다 ― 87
루부탱의 신발을 신어요 ― 88
붉은 상현달은 낙산에서 뜬다 ― 90
시인의 밥 ― 92
제4부
붕어 운동을 하다가 잠들었는데 ― 97
밥으로 오십니까, 왜 ― 98
옹기 ― 100
초록 식탁 위의 빵 ― 102
종탑에 오르다 ― 104
꽃십자가 ― 106
가슴 구유 ― 108
내가 빵으로 웃을 때 ― 110
피에타 ― 112
빛.성녀 클라라 ― 114
붉은 부채와 서재 사이 ― 116
11월 금요일 밤에 함께 있었다 ― 118
보원사지에 놀러 오시다 ― 120
와온에서 붉은 산을 만나다 ― 122
뿔 ― 124
은밀하고 팽팽한 경계에서 ― 126
고리 또는 고리의 숲 ― 128
반딧불이를 찾아가다 ― 129
해설
이찬 살의 존재론, 지상의 에피파니 ― 130
저자소개
책속에서
호랑가시나무는 모항에서 새끼를 친다
호랑가시나무는 모항(茅港)에서 새끼를 친다 자꾸만 새끼를 치더니 무릎 꿇는 어미의 몸은 모서리를 풀어 풀어 둥글다 어리디어린데도 제법 도톰해진 새끼들의 얼굴 그 각점(角點)의 기운은 도도하고 다부져서 얼굴 살이 올라서 이목구비가 훤칠해져서 칠산 바다 빛으로 반짝거리는 생의 즐거움
그러나 팽팽한 이야기, 여기서 태어나는 절정의 순간에 뿌리내렸던 어미는 모항의 해풍을 품어 안고 따스하고 작은 항구에서 제 살을 깎아 시퍼렇게 솟아오르던 시절을 통과하는 늙은 나무의 순례기
모서리를 풀어놓는 일은 뾰족한 살의 각도를 깎아 내는 일 삶의 둥지를 한바탕 놀이마당으로 여는 일 어미는 자꾸 모서리를 깎는데 새끼들은 자꾸만 모서리를 만드는 모항에서 호랑가시나무가 붉은 나룻배를 탄다 ***
나무는 걷는다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본색, 본색을 드러낸다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물속에
옷도 벗지 않은 채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고
조금씩 수줍어한다
평온한, 저 면경 같은 물속에서
부끄러워한다 조금씩 더 부끄러워한다
햇살 한 줌으로 물구나무서는 나무들이
배꼽을 드러내고 성찰하는 오후
늙은 나무의 무게보다 더 찬란했을
새잎 한 장 태어나는 유쾌한 황홀로
바람이 걷는다
햇살이 걷는다
젖은 나무들이 걷는다
뿌리를 끌어안는 생잎사귀들은 속삭인다
좀 쉬어 가도 괜찮아요
절정이다 싶으면
잠시 머물다 가도 괜찮아요
몸속에 푸른 바람이 생기고 있으니
라일락 꽃숭어리처럼 안고 가세요
우듬지에 담아서 나누어 가세요
서로서로 손을 잡고 가슴 껴안는
따스한 날 물속에서 걷는다
제 무릎 아래 꽃무릇 세상 만드는 선운사의 나무들은 ***
오이꽃
팔순의 어머니 오이씨를 뿌리셨다
아파트 화단 흙을 퍼 올까 생각했지만
땅의 모서리를 훔쳐봤지만
단단하고 푸석해서 망설이다가
고봉산 자락 밑 흙을 빈 화분에 가득 채웠더니
아침나절 두 손으로 흙을 만드셨다
흙이 기름지다며
뼈 드러난 손으로 새 땅 빚으시더니
간밤 손바닥에서 반짝거리던 별을 심으셨다
씨 뿌리고 가신 후에
물은 잘 주고 있는지 싹은 나왔는지 너무 촘촘하면 옮겨 주어야 한다 창문은 활짝 열어 놓고 줄기 뻗으면 막대를 구해서 잘 세워 주어야 한다 전화벨 소리, 시간의 길이를 재셨는가 무게를 달고 계셨는가 첫 오이꽃 피던 날 이른 아침 꽃의 안부를 물으셨다
꽃이 피었다
샛노란 오이꽃이 다닥다닥 필 줄이야
피었다가 떨어지고 피었다가
떨어져 여름 내내 꽃만 피우더니 오이는 열렸을까
한여름 밤 어머니의 오이꽃 별자리에서 별들이 뜨고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