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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343645
· 쪽수 : 172쪽
책 소개
목차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걸어 들어가기
피아노의 몸
피아노의 영혼
찾아 들어가기
+ 클래식 음악을 위한 스트리밍 서비스
그게 다 음악
시행착오
무한히 변주되는 약속
나와 너의 등이 겹칠 때
음악-추기
+ 발레 클래스에서 사용하는 음악
음악-읽기
듣는 일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향유하는 사람보다 참여하는 사람이 그것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몸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혹은 온몸으로 참여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속속들이 싫어하고 낱낱이 사랑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보다 쓸 때, 춤을 볼 때보다 출 때, 피아노를 들을 때보다 칠 때 나는 구석구석 사랑하고 티끌까지 고심하느라 최선을 다해 살아 있게 된다.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 _「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그 콩쿠르 무대보다 더 생생히 기억나는 건 그 뒤에 있었던 일이다. 연말에 있을 학원 발표회에서 콩쿠르 때 연주한 곡을 포함해 몇 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레슨을 받느라 선생님 앞에서 신나게 연주하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선생님이 갑자기 웃었다. 왜 웃냐고 물었지만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았는데, 나는 선생님이 왜 웃었는지 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작은 두 손과 두 발, 온몸을 다 써가면서, 온갖 표정을 지으면서, 피아노에 다가갔다가 멀어졌다가 하면서. 선생님이 그때 웃으면서 “이런 거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처럼 온몸으로 집중해서 연주하던 아홉 살 어린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_「걸어 들어가기」
나의 세계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다섯 살 이래로 음정은 언어의 자리에 슬며시 밀고 들어와 등나무처럼 결합했다. 나는 평생 소리와 함께 살았고, 지금도 무수한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음이 되고 음이름이 되어 뇌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다. 그것은 색이 되어 잠시 뇌를 물들이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피아노의 유산이다. 나는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_「피아노의 몸」